투병 일기 - 누가 만들었어? 칭찬해. 박수!
일련의 모든 치료 과정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매거진 제목을 ‘일련’이라고 지었다.
암 진단 후 정밀검진 과정이 [part.1] 이라면, 앞으로 약 4개월간 진행될 6차례의 선항암 치료 과정은 [part.2] 이다.
3박 4일간의 입원 일정으로 병원에 들어오니 마음이 편해진다. 내게 얼마나 필요했던 고요한 시간인가. 주사 맞을 걱정보다 혼자 있을 생각에 들떴던 걸 보니, 지금 이 시점의 입원에도 다 이유가 있다.
입원 첫날은 항생제 이상반응 체크와 채혈, X-레이, 수액 맞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항생제 반응 체크는 손목 위 안쪽 살에 꽤 아픈 주사를 찌르면 몇 초 안에 살갗이 동그랗게 부어오른다. 다음날 시술 시 사용할 아주 소량의 항생제를 넣고, 검정 사인펜으로 환부를 동그랗게 체크해 이상반응이 있는지 시간을 두고 지켜본다. 찌를 때 외에는 특별히 아프지는 않다.
채혈과 X-레이는 정밀검진으로부터 수일이 지났기 때문에 기본 검사 차 하는 거라고 했다. 모두 무난하게 넘어갔다.
수액은 수술실 들어가기 전까지 달고 있어야 하므로, 아주 천천히 맞아야 한다고 했다. 왼팔에 링거를 연결하고 기다렸다. 종종 약의 떨어지는 압력보다 내 핏줄의 혈압이 높아 손등 쪽에 피가 흘러나오긴 했지만, 링거 속도를 살짝 높여주면 금세 쏙 들어가 호스가 다시 투명해졌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정갈한 병원밥을 먹으며, 밀린 드라마를 보고 쉬었다. 옆 병상이 비어 1인실 VIP룸 수준의 쾌적한 환경이다. 보험사에 확인 결과, '네 보험 약정은 기준병실 가격 기준이얌, 실비에서 차액의 50%만 줄게.'라는 안내를 받았다. 쩝, 아론케어. 일반 병실과 차이가 크지만, 편하게 누리기로 했다.
둘째 날은 케모포트를 삽입하는 것만 하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기는 12시간 정도, 시술은 병실 기준 출발부터 다시 돌아오기까지 딱 1시간이 걸렸다.
큰 수술들 틈에 시간이 나면 들어가는 간단한 시술이라 다른 병원에서도 특정시간을 알려주지 않은 채 대기하는 것 같았다. 수면마취를 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어 보였고, 대부분 국소마취로 진행되기 때문에 금식도 해당이 없었다. (금식은 병원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케모포트(Chemoport): 주로 항암치료제를 중심 정맥관(심장으로 이어지는 굵은 정맥 혈관)에 투여하기 위해 쇄골뼈 아래 피부층 안에 삽입한다. 혈관에 들어가는 기다란 호스인 포터(portal)와 주사바늘에 강한 내구성을 지닌 동그란 모양의 카테터(catheter)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물을 주입할 때에는 겉에다 전용 바늘을 연결한 뒤 링거를 맞는다. 수혈, 채혈도 가능하며, 혈관을 보호해주는 등 장점이 많은 중요한 장치이다.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으나 보통 항암치료가 끝나면 제거한다.
병원의 일과 시작은 빠르다. 수시로 들어와 환자상태를 체크한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그렇게 아침 6시도 안 된 이른 시간부터 하루를 준비했다. 부르면 내려가야 하니 아침부터 '대기모드'에 들어가야 하는데, 준비랄 건 별 게 없다. 손발톱 매니큐어 체크, 반지나 귀걸이 등의 장신구 착용 여부, 속옷 탈의 정도. 간호사 선생님은 상의의 방향을 뒤집어 앞면이 뒤로 가게 하여 단추를 잠가주었다. 조금은 쫓기는 느낌으로 식사해야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점심 즈음 양조위 닮은 과장님 회진 시간엔 '머리를?... 벌써?'라는 말을 들었는데, 통증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다는 말에 이내 웃으며 끄덕이셨다. '곧 불러주실 거예요, 잘하고 와요!'라는 말을 남기고 과장님이 사라진 지 5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자꾸 시계를 보게 된다. 긴장된 상태로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에너지 소모가 꽤 크다.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유난스러운 게 싫어 참았다. 하지만 해가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 까먹은 거 아니야? 리스트 오류 난 거 아니야? 수술샘들 다 퇴근하신 거 아니야? 내일 하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 6시 정각부터 10분간 시계를 들었다 놨다 초조해하다가 결국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나갔다.
"선생님, 저 아직 케모포트 안 했는데, 오늘 하는 거 맞죠?"
"네, 지금 앞의 분 들어가셨고, 환자분이 마지막으로 내려가실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나가는 밥차를 보고 물었다.
"그럼 밥은, 먹지 말고 기다릴까요?"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곧 내려가실 것 같아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는데... 다 하고 올라오면 식어있겠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핸드폰도 손에서 내려놓고 멍하니 창밖을 보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얼마 후 연락이 왔으니 내려가자며 담당 남자 간호사님이 병실로 찾아왔다. '왜 식사를 안 했어요? 누가 그래요?'라고 물었지만 콜이 온 참이라 이러쿵저러쿵 할 틈도 없었다. 다녀와서 따뜻하게 먹겠다며 식판 뚜껑 위로 수건을 덮었다. '덜 식어라. ㅎㅎㅎㅎㅎ'
수술실까지의 이동은 복도에서 이동침상으로 옮겨 이루어졌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자 내 병상에 있던 이불을 꺼내와 덮어주었다. 침대에 누워 꽤 빠른 속도감을 느끼며 머리 위로 하나둘 사라지는 복도 전등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진짜 아픈 사람이라는 게 와닿았다. 사실 검진을 해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지내고 있었을 거다. 증상이랄 게 딱히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는 신세다. 조금 씁쓸했다.
수술 대기실 담당 선생님이었을까. 팔찌로 내 이름과 생년월일, 수술내용을 확인하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어주셨다.
"오래 기다리셨죠. 에효, 오늘 큰 수술이 좀 오래 걸려서."
퇴근 시간이었다. 나는 병실에서 내 시간을 보내며 기다렸지만, 선생님들은 하루 종일 수술에 매달려 있었을 터였다. 직장인의 고된 표정과 목소리.
"그랬구나... 그럴 수 있죠..."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을 이내 눌렀다. 나 또한 수술대 위에 올랐는데 예상과 달리 오래 걸릴 수 있는 것이니.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다가와 질문을 하나 해오셨다.
"혹시 수술한 적 있어요?"
"네. 10년 전쯤에요."
"어쩐지. 긴장을 하나도 안 하시더라. 왠지 의연하게 계시다 했어요."
의연한 태도. 어른답다고 칭찬해 주신 것 같아 멋쩍게 웃었다.
조금은 싸늘한 수술실. 수술대로 자리를 옮기고, 상의는 어깨 아래깨로 내리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얼굴 위로 아치형 틀을 두고 그 위에 천을 덮어 시야를 가렸다. 여자 선생님들은 누워있는 나를 보며 한 마디씩 말도 걸어주고 다독여줬는데, 시술을 집도하는 남자 중년 의사 선생님은 몹시 지쳤는지 딱히 인사도 나누지 않고 시작이 되었다.
"차가워요." - "마취예요?" - "소독이요." - "아, 네."
수술은 안 무서운데 쇄골 근처에 할 마취바늘이 왠지 무서웠다. 슥슥 갈색 소독약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다 바르고 마취에 들어갔다.
"딱끄음."
"읍..."
... 어? 치과 마취보다 안 아픈데? 몇 초 후에도 비슷한 찌릿함이 두어 번 오갔으나 그냥 팔뚝에 얇은 주삿바늘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왜 수면마취를 안 하는지도 알 것 같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피부 밑에 넣을 장치를 만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넣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뜨거운 무언가로 지지는 느낌도 났다. 타는 냄새와 함께. 그러다 전기충격 같은 통증이 느껴져 "오옥!" 하고 소리를 내자, "아파요?"라고 물어오셨고, "약간요."라고 답한 뒤 심호흡했다. 이후에 직접적인 느낌은 거의 없었다.
수술의 진행 상황이 궁금했다. 짼 건가, 넣은 건가, 꿰맨 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피부가 엄청 땅기는 순간이 있었고, 혈관을 당겨 기구와 연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관에 바늘 들어갈 때 좀 뻐근할 거예요."
뻑으은-. 그다음엔 뭐, 없었다. 괜찮았다. 마취도 잘 들었는지 통증이 없었고, 무언가 당기고 만지는 느낌만 계속될 뿐이었다. 왼쪽으로 돌리고 있던 고개만 아팠다. 어느 블로그에서 핏줄을 당겨올 때 목에서부터 끌어다 묶는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무서운 시술은 아니었다. 얼마 후, "컽."이라는 소리가 두세 번 들리고, 시술은 마무리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감사 인사를 드린 뒤, 이동침상에 누워 영상의학과에 X-레이를 찍으러 갔다. 장치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일어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침상에 걸터앉은 채 촬영기계를 끌어안고 찍을 수 있었다. '그래, X-레이를 서서 찍지 못하는 경우도 많겠지. 좌식 X-레이도 필요할 거야.'
"오늘 마지막 환자 분이시죠?" 촬영 선생님은 침상 이동 선생님에게 몹시도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7시가 훌쩍 넘었네요. 퇴근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병실로 돌아와 나의 침대에 앉았다. 수건을 들춰보니, 밥이 많이 식지 않았다. '히히, 미지근해.' 밥을 다 먹고, 수고한 나를 위해 간식도 먹었다. 암환자용 영양식. 밥을 먹는 동안 후기에서처럼 약간의 이물감은 느껴졌지만, 심한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식사를 다 하고, X-레이 결과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왼쪽에 꽂아두었던 수액 주삿바늘을 뺐다. 이제 링거도 케모포트에 맞을 수 있다. 따끔공포에서 멀어지는 거다. 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두 손이 자유로워져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나는 '아이언맘'이다. 소재가 아이언은 아니지만, 기계 덕에 오른쪽 쇄골 피부 아래가 볼쏙하게 올라온 게 마치 어려운 일을 해낼 수퍼히어로 같달까. 항암 부작용도 잘 이겨내는 수퍼파월 우래기 엄마.
"아엠 아이언맘." 기특하다, 나 자신!
23.08.16. 수요일.
여러 산등성이 중에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