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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드라마 |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언젠가는 슬기로울 '회사' 생활

by 규민

드라마 |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_ 언젠가는 슬기로울 '회사' 생활


일단 이 글을 시작하기 전 나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언젠가는 슬기로울 회사 생활.'이라고. 그리고 모든 사회초년생에게 말하고 싶다. 이 드라마는 고윤정의 외모만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고. 그냥 다 비현실적이라고.

나는 모든 '슬기로운 '시리즈를 사랑한다. 슬기로운 첫 시리즈라고 말할 수 있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가히 나의 인생 드라마이며,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빠짐없이 챙겨봤다. 그러니 '언슬생'은 볼 수밖에 없었다.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1화를 보고 갑자기 울 줄이야. 2화를 보고 위염으로 끙끙거리며 잘 줄이야.


1화에서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다시 원하지 않던 직장생활로 돌아간 '오이영'이 나온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세 명의 동기. 익숙하지 않은 일.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책임감과 의무감. 한 시간 내내 무표정과 울상에 어딘가의 얼굴로 회사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오이영의 모습이 어딘가 나와 겹쳐 보였다. 마음 둘 곳 없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하루를 메워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나의 어딘가도 같았다.

2화에서는 전공의들의 탈주를 막기 위한 윗년차들의 노력이 나온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표남경이었다. 병동에서 유명한 까다로운 환자 '염미소.' 염미소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표남경.' 결국 표남경은 택시를 타고 탈주하지만 '염미소' 때문에 돌아온다. 그리고 둘은 마음의 벽을 허문다. 염미소의 까다로운 요구들과 짜증 나는 목소리들에 위염이 올라왔고, 말도 안 되는 훈훈한 마무리에 속이 아파왔다. 현실에는 까다로운 염미소는 있지만, 염미소와 관계가 회복되는 결론은 없으니깐. 결국 그 날밤 아린 속을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어느덧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4년 차이다. 내 직업은 공무원이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민원인들을 만나고 부딪힌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부대끼며 상사를 마주한다. 시간이 갈수록 깨닫는 것은 단 하나다. '사회생활이 적성에 안 맞는데요.' 나를 괴롭히는 민원인과 사이가 좋아지는 일은 없다. 마음이 맞지 않아 부딪히는 동기와 편의점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허물없는 사이가 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마주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또 둔다. 회사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여 단체사진을 찍을 때 대뜸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좋아해도 되냐.'라고 묻는 건 더더욱 말도 안 된다. 여기서 오로지 현실감이 있는 건 슬프게도 빌런 '명은원' 뿐이다. 꼭 명은원 같은 존재는 회사 어디에나 있으니깐.


드라마 속 오이영은 조금씩 슬기로워지지만 현실 속 '나'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슬기로워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휴직'이라는 '탈주'를 꿈꾼다. 도대체 '언제' 나의 회사 생활은 '슬기로워'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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