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내 입으로 말해주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는 것 같아.
여름방학이 다가오면 Summer School에 참여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된다. 4주 정도로 진행되는 여름학기는 오전 수업만 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은 데다 보수도 괜찮아서 웬만하면 하는 편이지만 참여를 할 경우 방학의 절반이 없어지기 때문에 마냥 쉬운 결정은 아니다. 소위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라 그런지 교육구는 매년 여름학기 교사들을 찾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중, 고등학생들은 학기 중에 학점을 잘 받지 못한 학생들을 위주로 여름학기가 진행이 되지만 초등학교의 경우는 학업적인 추가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은 물론,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굳이 학업적인 필요가 없더라도 참여하는 학생들도 많다. 하루에 4시간 동안 무료로 수업을 받을 수 있고 수업 후에는 오후 6시까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사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다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아침, 저녁, 간식은 모두 무료다.
이번 여름학기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모든 학교에서 여름학기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학교에서 여름학기를 가르치는 것은 꽤 흔한 일이다. 이번 여름학기 동안 나는 West L.A. 에 있는 Getty Center에서 그리 멀지 않은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흔히 로스앤젤레스의 서쪽은 부촌으로 알려진 동네다.
여름 학기를 시작하기 전 수업 준비 차 해당 학교를 처음 방문하면서 학교가 위치한 환경에 매우 놀랐다. 고속도로에서 나와서 학교까지 이르는 길은 마치 국립공원의 숲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고 개성을 살린 여러 집들을 보면서 나도 한 번 저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요즘 불법이민자 단속 이슈와 관련하여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L.A. 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그렇듯이 미국도 소득에 따라 거주지가 결정이 되고 각각의 단절된 사회는 너무나도 상이하여 이 블록에서 저 블록으로 운전을 하며 넘어가면 과연 이곳에 같은 국가인지를 생각하게 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 부자 동네에 있는 아이들도 공립학교에서 제공하는 무료 여름학기에 참가를 할까. 여름학기 첫날 내 반에는 1학년 14명의 학생들이 등교를 하였다. 읽기와 수학을 간단하게 평가해보니 일부는 학업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었고 나머지는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오는 것을 선택한 아이들이었다. 부모들의 직업이 의사, 변호사, 방송국 직원, 콘텐츠 제작자, 회사 경영진 등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집에서 자신들의 자녀들을 돌보아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참여를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교수-학습에 있어서 그리 큰 부담이 없는 여름학기는 각 학년에 해당하는 기초적인 학업내용을 점검하고 복습하는데 중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 반에 온 학생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학년 이상의 학업 수준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게 하였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소그룹으로 학생들의 학업적 필요에 맞는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여름학기 3주 차에 들어서면서 결석을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 학생들은 가족과 여행을 갔거나 개인적으로 참가하는 사설 캠프로 인해 더 이상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여러 번 여름학기를 경험한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광경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은 방학이 되어도 긴 기간 동안 멀리 여행을 가지 않고 개인이 재정적인 부담해야 하는 사설 캠프 같은 것은 참여하지 않는다. 방학 동안 맞벌이를 해야 하는 부모들 입장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하고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학교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사회 안전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여름학기를 3일 남긴 금요일, 우리 반에는 3명의 학생이 앉아 있다. 한 명은 우크라이나에서, 한 명은 인도에서, 또 한 명은 중국에서 온 학생이다. 이 학생들은 학업적으로 도움이 가장 필요한 학생들이었고, 또 마지막까지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들이 되었다. 이 아이들이 나에게 묻는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갔냐고. 나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내 입으로 이 사회가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그들은 이 무정한 현실을 곧 삶을 통해 온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그 일을 담당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