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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Oct 05. 2023

#2. 경험을 만드는 일이란 (1부)

'누워서 보는 전시'를 기획하다

'세계적인 작가 자넷 에힐만(Janet Echelman)의 작품,
앨리웨이 광교에 설치되다'

앨리웨이 광교 오픈 전부터 자넷 에힐만의 첫 국내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홍보 기사가 나가곤 했다. 그런데 나는 자넷 에힐만이라는 예술가를 입사하고 처음 들어봤었다. 서구권에서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유명한 작가는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주변 동료들을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반응들이었다. 그렇다면 고객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자넷 에힐만의 작품. 출처 - 구글 검색

허나 꽤나 고가의 금액을 들여 작품을 설치하는 상황이라, 회사에서는 이 작품을 이용한 이슈메이킹을 우리 팀에게 요구했었다. 인지도가 없는 예술작품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먼저 자넷 에힐만의 작품들을 살펴봤다. 특수 섬유를 공예기술을 이용하여 그물로 짜낸 뒤 공중에 설치하는 방식들로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조명에 따라 변화하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고, 공중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에 넋 놓고 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이 점을 살려내야 했다.


앨리웨이 광교 광장 모습(위)과 설치되는 자넷 에힐만 작품의 도면(아래).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앨리웨이는 총 3층짜리 상가 건물이어서 작품이 설치되는 높이가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넷 쪽에서 보내온 도면을 살펴보면 지면에서 작품까지는 약 5미터가량 띄워진 상황. 거기에 건물끼리 연결되어야 하다 보니 광장을 거의 꽉 채울 만큼 넓은 너비를 자랑했다. 자칫 잘못하면 작품이 사람들을 짓누르는 느낌이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크게 3개로 정리됐다.

1. 일반인들에게 자넷 에힐만은 굳이 찾아올 만큼 유명한 작가가 아니다.
2. 해외의 작가 작품처럼 설치 위치가 높지가 않다.
3. 작품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이를 다시 해결책 관점에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공중에 설치된 것이 '작품'임을 알려야 함
2. 사람들의 아이레벨을 낮춰야 함
3. 찾아올만한 이벤트로 만들어야 함


해결점들을 조합하다 보니 '누워서 보는 전시'라는 콘셉트가 도출되었다. 앨리웨이는 넓은 광장에 잔디 구역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 누워 작품을 보게 된다면 보다 집중도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여기에 '전시'라는 타이틀을 통해 하늘에 설치된 것이 작품임을 각인시키고자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눕는 행위를 이끌어낼 것인가? 처음 생각한 방식은 돗자리였다. 한강만 가도 돗자리 위에 누워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기왕 '전시회'의 느낌을 주려면 보다 강인한 요인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에서 답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서울숲 언저리, 침구 브랜드 '식스티세컨드'는 침대를 숲 속에 설치해 두었다. 침대만큼 눕는 행위를 유발하는 강력한 요소가 또 있을까.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레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거다 생각이 들었고, 마케팅팀에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


식스티세컨즈는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였기에 쉽게 라포 형성을 할 수 있었다. 마침 식스티세컨즈도 경기권 고객 확보에 대한 니즈가 있어서 서로 좋은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작품을 누워서 감상하는 잔디 구역에는 침대를 배치하여 특정 시간에 일정 인원만 입장시키고, 나머지 구역에는 가구들을 제작 배치하여 대기할 수 있도록 꾸민다. 근처 공실에 식스티세컨즈 쇼룸을 운영하여 전시를 경험한 사람들이 제품 구매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수수료 계약을 통해 식스티세컨즈의 제품이 팔리면 우리의 수익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도 함께 이야기 나누었었다.

식스티세컨즈에서 제안한 가구 배치 도면(좌)와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화 시킨 모습(우)


여기에 주파수를 이용한 헤드셋 시스템으로 입장 고객들이 동일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 렌털 업체에 컨택했다. 음악은 작가에게 연락하여 작품과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구축하고자 했다.

최종적으로 야외 공간에서 잔디 위의 침대에 누워 바람에 흔들리는 작품을 음악과 함께 감상하는 경험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작품이 각자 마음속에서 완성되기를 희망했다.


"제 작품을 한국 사람들과 공유하고 오랜 기간 이 작품을 통해 여러분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이 제 작품을 보게 된다면 바람에 따라 부드러운 섬유가 몇 분, 몇 시간 동안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패턴을 인식하게 되고, 수년 동안 날씨와 햇빛에 따라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가 이 작품을 통해 감각적인 경험을 발견하고,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 내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제 작품이 각자의 마음속에서 완성되길 희망합니다."

- 자넷 에힐만의 한국 설치 작품에 대한 인터뷰 발췌
앨리웨이 광교에 설치될 작품 예상 렌더링 이미지

이벤트적 요소로는 전시 오픈 행사로 북토크 세션디제잉 공연을 준비했다. 낮시간 동안은 사실 햇빛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북토크 세션을 통해 여유로운 분위기를 제공하고, 해가 진 후 조명이 켜지고 나면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부가적으로 인스탁스와 콜라보하여 전시 사진 남기기 라던지 인증샷 이벤트, 작품 관람에 관한 브로슈어 등을 준비했다. 오프닝 행사는 3일. 이후 전시 공간 운영은 한 달로 기간을 세팅했다. 이제 작품만 설치되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말았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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