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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Mar 20. 2020

위로 받고 싶은 밤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위로 받고 싶은 밤



  어김없이 바쁜 토요일 밤, 야간근무가 시작되었다. 일찍부터 유흥가 곳곳에 술기운이 가득했다. 차도와 보도의 경계가 사라지고, 화려한 네온사인에 달빛마저 무색한 밤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거리 위의 이기주의자들이 발산하는 권리의 남용이 점차 보편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유흥가 단골손님이지만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 112순찰차는 오늘도 눈치 없이 유흥가 거리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취객들이 점령한 무질서한 거리 위에 공권력 따위가 설 자리는 없었다.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단순한 시비의 대상이었고, 반짝이는 경광등은 위엄을 잃은 조롱거리에 불과했다.

  

  인산인해(人山人海)의 거리에서 순찰차의 가속페달을 밟을 기회는 없었다. 100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를 차로 빠져나가는데 무려 10분 이상이 소요됐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무언가’가 순찰차 조수석 유리창에 쿵 하고 부딪쳤다. 토요일 밤거리의 안주인, 취객의 거친 노크였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이미 술이 거하게 취해있었다. 순찰차 옆에 타고 있던 후배 경찰관은 아직 이 거리의 풍경이 익숙하지 않은지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섣불리 창문을 열거나 차에서 내리면 악의 없는 기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의 보호대상인 선량한 시민에게 말이다. 경계심을 유지한 채 손이나 흉기가 순찰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살짝 창문을 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 좀 집에 데려다줘.”

  

  “이건 112순찰차입니다. 택시가 아니에요.”

  

  “알아 나도. 민중의 지팡이. 너희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잖아! 그러니까 빨리 문 열어봐!”

  

  남성은 순찰차 뒷문 손잡이를 거칠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그저 술이 취하면 가끔씩 이용하는 ‘무상 택시’와 같은 순찰차의 뒷문이 잠겨있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평소였다면 일단 문을 열고 그를 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와 장소, 무엇보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단순한 감이 아닌, ‘토요일 밤 그 거리’에서 겪었던 그동안의 기억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느낌이었다.

  

  “선생님, 댁이 어디세요?”

  

  “집은 OO시인데, 택시가 안 잡혀서 그래. 택시정류장 까지만 데려다줘.”

  

  [빵빵 빠아앙]

  

  순찰차 뒤쪽으로 감정 섞인 차량 경적 소리가 연발했다. 즐길 시간도 부족한 토요일 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이 오른 거리 위에서 불청객들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밖에. 그렇게 우리의 동승이 시작되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역시 대한민국 경찰이 최고여!”

  

  남성은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자 노골적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그가 거칠게 숨을 내뱉을 때마다  진한 주취(酒臭)가 뿜어져 나와 순찰차 안을 메웠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그 거리’에 갇혀있던 우리는 창문도 열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까지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남성과 달리 우리는 그 상황이 불편했고, 심지어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그는 순찰차가 유흥가를 빠져나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고향 친구가 모 경찰서장이라는 이야기, 회사에서 나와 새롭게 시작한 사업 이야기, 사춘기에 접어들어 속을 썩이는 딸의 이야기까지. 순찰차 내부의 상황만 본다면 취객을 집으로 모시는 택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경찰 노릇하기 힘들지? 나도 다 알아. 자네들 고생하는 거. 그래도 공무원이 최고야, 이 친구들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거 감사하게 알라고 젊은 친구들!”

  

  “아, 예… 감사합니다.”

  

  우리의 보호조치 대상자가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후배는 그의 맥락 없는 이야기에 맞장구도 쳐가며 최선의 ‘경찰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사이 순찰차는 택시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택시 타고 귀가하세요.”

  

  “…….”

  

  그는 갑자기 말문을 닫은 채 순찰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언제나처럼 불길한 예감은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

  

  “내리라고?”

  

  “네, 선생님. 저희는 신고출동을 나가봐야 합니다. 여기서 내려 드릴게요.”

  

  조급한 마음의 우리와는 달리 그는 미동도 없었다.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반쯤 풀린 눈으로 우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공을 울렸다.

  

  “이런, 씨팔!”

  

  그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서둘러 취객을 택시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신고출동을 나가야겠다는 내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내리라고? 집에 데려다준다고 할 땐 언제고, 여기가 어디라고 내리래? 나 여기 내렸다가 차에 치여 뒈지면 너희가 책임질래? 너희가 그러니까 짭새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이 개새끼들아! 나 못 내려. 아니, 안 내릴 거니까 너네 마음대로 해 봐 어디.”

  

  “선생님! 욕하지 마시고 어서 내리세요! 저희가 택시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렸잖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순찰차 뒷좌석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삼촌과 조카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와 우리는, 어느새 대한민국 경찰관과 주취자의 전형적인 실랑이 판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과정이 다를 뿐 결말은 같았다. 우리가 출연하는 드라마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해피엔딩은 드물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후배는 그와의 언쟁에 휘말려 있었다.

  

  “집에 데려다 줄 거 아니면 나 여기서 그냥 잘 거니까 마음대로 해 봐!”

  

  “선생님, 억지 그만 부리시고 내리세요!”

  

  “야, 너 몇 살이야? 어린 새끼가 건방지게. 안 내리면 어쩔 건데, 체포하게? 해봐 이 새끼야!”

  

  “경찰관 나이는 왜 물어보세요? 그리고 체포한다고 한적 없으니 어서 차에서 내리세요!”

  

  대화는 점점 본질을 벗어나 단순한 감정싸움에 치닫고 있었다. 경찰관이 말려든 것이다. 그때 나는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핸드폰의 미세한 진동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느라 전화가 온지도 모르고 있었다. 전화기 화면에 표시된 발신자를 보는 순간, 탈출구가 보였다.

  

  [사랑하는 딸]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반대로 돌아가 순찰차 뒷문을 열고 그의 전화를 대신 받았다.

  

  “안녕하세요. OO경찰서 경찰관입니다. 일단 놀라지 마시고요.”

  

  “네? 경찰이요? 경찰이 왜… 아, 혹시 저희 아버지가 또……."

  

  그의 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의 귀가를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고등학생인 그의 딸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됐다며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했다.  

  

  "선생님, 전화 좀 받아 보세요. 따님이에요."

  

  우리의 숱한 간청에도 요지부동으로 누워있던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아 전화를 받았다. 마치 회사 회장님의 전화를 받는 것처럼 그는 처음으로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어, 우리 딸 아직 안 잤어? 아빠 이제 들어갈 거야. 걱정 마, 사고 안쳤어. 아빠 괜찮아, 안 취했어. 집 도착하기 전에 다시 전화할게. 그래, 알겠어. 지금 바로 들어갈게. 먼저 자 우리 딸."

  

  전화를 끊고 난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역시 더 이상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자진해서 순찰차에서 내린 그는 택시 정류장 쪽으로 말없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다시 순찰차를 타고 이동하려는 순간, 그가 손을 흔들며 순찰차를 세웠다. 아직 그와의 감정싸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후배는 처음에 비해 다소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또 무슨 일이십니까? 이제 그만 좀 들어가세요! 선생님 따님도 지금 걱정하고…….”

  

  “미안합니다.”

  

  종전을 알리는 한 마디.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더 이상 그는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주취자도, 경찰관에게 욕설을 퍼붓는 안하무인도 아니었다. 그저 지친 일상을 술 한 잔으로 달래고,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가장이었다. 무엇이 그 짧은 순간 그를 바꾸어놓았는지, 아니 원래 그의 모습을 되찾게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원했던 건 지친 몸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경찰서비스가 아니라, 지친 마음을 달래줄 한 마디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그도, 그리고 우리도, 어쩌면 그 순간 서로가 처한 상황을, 서로의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 같은 밤, 술에 의지하지 않고 견뎌내기에 얼마나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냐고. 오늘 같은 밤, 아침까지 녹초가 되도록 뛰어다녀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얼마나 외롭고 고된 직업이냐고.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 잘한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혼이 나면 괜스레 설움에 북받쳐 오기가 생기던 시절. 나도 모르게 이불에 지도를 그린 날, 놀이터에서 놀다가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를 돕겠다고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깨뜨린 날, 아빠가 차키 옆에 놓아둔 천 원짜리 한 장을 몰래 가지고 나와 친구들과 과자를 사 먹은 날. 그 모든 순간마다 내가 잘못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내 이야기는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무조건 혼을 내는 어른들이 미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어른도 있었다. 가장 큰 어른이면서도, 항상 내 편이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다른 어른들과는 달랐다.

  

  '괜찮아, 내 새끼, 다 괜찮아. 울지 말고, 앞으로 잘하면 되는 거야.‘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꾸지람에는 눈물이 찔끔찔끔 나다가도, 할머니의 따스한 위로와 손길이 닿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다 괜찮다며, 앞으로 잘하면 된다며,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좋았다. 그 후에도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기 전 생각이 났던 건,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따끔한 한 마디나 회초리가 아닌, 할머니의 온화한 목소리와 손길이었다.

  

  그날 밤은 예상대로 유난히 긴 밤이었다. 일요일 아침을 밝히는 햇살은 그날따라 좀처럼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112 신고는 빗발쳤고, 유흥가 한복판은 우리에게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함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길고 잔인한 토요일 밤,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키던 순간의 우리는, 과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함을 갖추고 있었을까. 밤새도록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항상 강인해야 하는 대한민국 경찰관도, 따스한 위로의 목소리와 손길이 그리운 서글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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