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거리두기 4단계 이후 거기다 폭염으로 인해 방구석에서 넷플릭스 영상물 보는 낙으로 지내고 있는 요즘, '와 이거 정말 꼬아도 너무 꼬았어. 이거 무슨 이런 미친 전개가 있지' 하면서도 계속해서 빠져들어 몰입 모드가 되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미드였다.
원제가 더 이 드라마 성격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친 듯 거의 일주일(45분짜리 한 시즌당 15화, 시즌6까지 있다)에 걸쳐 TV 앞에 있게 만들고야 만 미드.
원래 막장드라마일수록 더 중독성이 강하다고 했던가. 이건 막장이야 라고 자신에게 외치면서도 기어이 끝까지 정주행 하게 만들게 하는 막장의 매력이란~!!
제작사가 숀다 랜드, '그레이 아나토미'. '브리저튼' 등 굵직굵직한 드라마 제작한 바로 그 숀다 랜드 제작의 드라마였다.
그러고 보니 당찬 유색인종 여성 주인공 캐릭터 일관성이 있어 보이긴 한다.
애정이 가는 주인공 캐릭터 애널리스 키팅
주인공인 애널리스 키팅은 유색인종으로 자수성가한 인물로 로스쿨 교수, 남편 또한 교수에 백인이다.
언뜻 보기에는 성공한 인물이고 매사 분명하고 자신만만해 보이고 승소를 위해서는 나쁜 짓도 서슴없이 하는 과감한 비도덕성(?)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데, 애널리스 캐릭터가 여기까지만 이었다면 아마 정 떨어지고 꼴 보기 싫었을 거다.
그러나 이렇게 독하게 혼자 힘으로 성공한 여자의 사생활과 인생역정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양성애자인 데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도덕성에 대해 자아비판을 하며 결국 알코올 중독까지 걸려 버리는 약한 모습을 갖고 있는 여성이기에 입체적이고 애정이 가는 캐릭터로 완성되었다.
실제로 극 중에서도 이런 애널리스 키팅을 적으로 돌린 사람들도 있지만 바로 이러한 모습 때문에 몇몇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받게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자신의 남편의 살해 현장에서 왜 그렇게도 똑똑하고 냉철한 로스쿨 교수인 주인공이 범죄를 은폐할 것을 결정했을까 하는 점인데,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그녀이기에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시즌 1에서 시작되는 살인의 연속,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작은 것을 덮으려다 점점 더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거기다가 이제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정치권까지 연루된 음모까지 얽힌 연쇄살인이 되어 버린다.
드라마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애널리스 키팅이라는 여성에게 마음이 끌리는걸 어찌할 수 없었다. 단호하고 강인하고 자신의 약한 면에서도 솔직한 그녀, 그래서인지, 악이 악을 이기는데 '정의'라고 이름 붙이는 마지막의 승리(?)가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잠시 주기도 했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
그러나 바로 뒤이어 든 생각은 어쩌면 이렇게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 현실사회에서도 순결 무구한 '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법정은 그러한 거짓말을 오히려 부추기고,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의 판단 안에서 허용되는 '선'이 승리하면 우리는 그걸 정의라고 멋대로 이름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인지 씁쓸했다. 결국 시즌9까지 이어진 그 많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고, 또 정의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감춰지고, 더 큰 악의 음모였다고 결론지으며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빠져나간다'는 결말.
그래서 원제가 get away with murder 였는가 보다. 얼마나 솜씨 좋게 살인죄를 면하게 되는지가 이 드라마의 주제인 것일까?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비올라 데이비스가 연기한 애널리스 키팅이라는 인물 외에도 이 드라마에는 애처롭고 공감 가는 범죄자들이 두 명 등장한다. 프랭크와 보니가 바로 그들이다.
애널리스 키팅이 감싸려 했던 로스쿨 학생 5인방의 캐릭터도 입체적이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겠지 했던 예상을 뒤집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이기적인 의도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만 살고 보자 하는 인물, 그러면서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그 이유로 갖다 붙인다.
또 우유부단하고 나약할 것 같은 캐릭터가 의외로 자신의 양심을 지킬 때는 강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하고, 배신자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도 있었다.
학생 5인방이 입체적이고 일관되지 않은 변화하는 캐릭터였다면 보니와 프랭크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애널리스의 곁을 지키고 애널리스의 편이 되어 주기에 그 방식이 비록 옳지 못했다 해도 이것이 진정한 인간 사이의 신뢰라는 것일까 하는 뭉클함까지 느껴지는 인물 두 명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을 지켜주었던 사람을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자'는 것으로 내면화했던 것 같다.
비록 막장드라마이긴 했지만 캐릭터들이 살아있어서 보는 내내 다음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궁금함으로 볼 수 있었던 드라마
이야기 전개도 먼저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여주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다시 한번 현재로 오는 여정을 보여준다.
마치 녹화된 영상을 앞으로 돌려 보았다가 다시 뒤로 돌려보는 것 같은 그런 구성을 매 회마다 반복하면서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와 원인이 밝혀지는 방식이다.
시즌9까지 달려온 드라마의 결말은... 승리였지만 그 승리의 축배를 함께 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곁에 없는 형벌을 받게 되는 씁쓸한 결말.
어쩌면 보니와 프랭크의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안타까웠다.
다른 누구보다 한 사람에게 진실했던 두 사람이 과거의 아픔을 모두 딛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
드라마의 마지막 엔딩은 이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웨스가 로스쿨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강의실 칠판에 'how to get away with murder'라고 쓰는 것으로 끝맺는다.
어쩌면 선과 악의 사이에서 아니 절대 '선'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니 표현을 바꾸자면 덜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법정 드라마이지만 법정 안에서는 '쇼'가 진행되는 것이고 우리가 찾는 진실은 법정 안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음을 각자가 지은 죄에 대한 심판은 법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법 밖에서 심판받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나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 내가 꼽는 이 드라마의 미덕
1. 주인공이 흑인에 양성애자에 알코올 중독자로 소수 중의 소수를 대표하고 있다는 점
2.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들 중 진심이 느껴지는 캐릭터가 몇 명 있었다는 점
3. 법정 드라마이면서도 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법의 처벌을 피하는 덜 나쁜 사람들의 승리로 끝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