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로 기억한다. 달력의 빨간 날임에도 불구하고 반강제로 학교를 나가야 하는 처절한 수험생이었다. 그때 엄마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먹고는 그날따라 왜인지 교실 밖을 나와 하늘을 본 날이었다. 내가 누구와 어떤 대화 맥락 속에 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 이야기를 하며 내가 떠올린 장면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십 대의 나이를 감안하면 분위기 근사한 곳에서 남자 친구와의 알콩달콩 데이트를 떠올릴 법도 한데 내가 떠올린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둘이 손을 잡은 게 아니라 가운데 아이 둘이 있는 거야. 그렇게 네 가족이 오붓하게 손을 잡고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는 거지."
어쩌면 그 당시 내가 그린 완전한 행복이란 건 그런 평화로운 가정을 일구어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누구나 나처럼 그리는 '완전한 행복' 한 장면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완전한 행복'이란 것이 모법 답안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부자가 되지 않으면 불행한 듯 부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손짓한다. '평범해도 '이렇게'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요즘 강남 부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빠르게 돈 버는 방법' 의식도 하기 전에 손가락은 이미 클릭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아이와 함께 근사한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네 가족이 들어온다. 일도 멋지게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는 선배 언니 이야기가 보인다. 그 장면을 보고 나면 나의 시선은 왜 나에게로 향하고 있을까? 나는 자꾸 씁쓸함을 삼켜야 했을까?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둘을낳고 주부로 있으면서 나는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싫어 자꾸 발버둥 쳤다.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나가는 누군가처럼 나도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 둘을 키우며 집에서 내가 벌여 놓은 일들과 씨름하던 어느 하루, 도저히 이것저것에 둘러싸인 것이 싫어 도서관으로 도피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아이스라떼를 마셨다. 절로 행복이란 단어가 내 안에서 솟구쳤다. 그 순간 나의 행복 치는 이걸로도 족한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삐 살아가고 있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회의감이 들면서 나를 바쁘게 하던 것을 끊어 나갔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그러던 중 만난 책 <매일매일, 와비사비>란 책 속에서 내가 추구하고픈 인생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와비 사비 ( 일본어: わび・さび(侘・寂) ) 불완전함의 미학' 즉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내 인생은 행복하지만 때때로는 우울하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그 나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기록의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히말라야 정상 자락의 순간이 아니면 어떠리, 내 일상으로 걷어 올리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