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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Oct 24. 2021

말은 어리석고 글은 정의롭습니다.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제 시간에 온다> 성호의 편지

말은 어리석고 글은 정의롭습니다.     

어제의 나는 말하고 싶은걸 참지 못하고그새 가벼이 날렸습니다.

말은 가볍습니다.

떠나버린 말은 야속하게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러니 내글로 쓰는 게 안전한 사람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말을 뱉는 천박한 버릇은 고치질 못했습니다.     

문학소녀의 탄생 배경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한 건 고1 때부터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시를 썼고, 내가 손으로 꼭꼭 눌러 적은 시를 읽고, 친구들은 눈시울이 붉었습니다. 

나를 말하기 위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단 슬픈 감정을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시가 좋았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돌려 말하고 짧게 말하는 시가 좋았습니다.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는 돌려 말하는 편이 좋기도 한 법입니다.      

열여섯 겨울 방학이었습니다. “엄마, 나 새봄이네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와도 돼?” “응, 그래라”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요. 엄마가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말이에요. 아이를 일곱이나 낳고 기르던 여자의 삶이 어떤 건지 이제야 일부 가늠해 봅니다.

그 날 엄마는 사라졌고, 며칠 뒤에 주검으로 발견되었어요. 

부검이 끝난 엄마 가슴에는 바늘로 꿰맨 자국이 엑스자로 크게 나 있었어요. 그걸 본 나는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옆에 있던 큰이모는 나를 억세게 끌어안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의 내 느낌이나 생각보단 큰이모가 울던 장면만이 생생해요.     

그렇게 엄마가 없이 고등학생이 됐고, 시를 썼습니다.

트라우마, 슬픔 이런 것은 모르겠고 엄마가 없으니 불편한 것 투성이었어요.

밥을 챙겨주는 새엄마가 있었는데 다정스레 대화를 나누거나 내 이야길 해본 적이 없었어요.

엄마가 없으니까 생리대를 사달란 말이 아빠에게 하기 어려웠어요. 교복 블라우스와 양말, 속옷은 매일 손으로 비벼 빨고 꼭 짜서 널어놨어요.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일이었어요. 나는 그때 종종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건 엄마가 없어서 슬픈거라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그 기분을 시로 썼어요. 그러고나면 내가 대단한 시인이 된 듯 했어요.      

언젠가 개그맨 이성미가 티비에 나와서 그러더군요. 엄마가 없으면 일생이 슬프고 아빠가 없으면 외롭다구요. 저는 그 의미가 뭔지 느꼈어요. 서글펐거든요.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엄마가 없어서요. 이젠 아빠도 안 계시니 외로움도 알 것 같아요.     

와 이렇게 써놓으니 천하에 불쌍한 인간으로 그려 놓았네요. 그래놓고 자기도 애를 놔두고 혼자 신나게 살고 있으니, 자신의 과거를 극복 못한 인간이 따로 없네요. 

제 이야기가 읽기 불편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의 괴롭고 힘든 이야기는 마음에 담고 싶지 않은 법입니다.  


신용목 시인의 시처럼,     

 어차피 세상은 망할 건데뭔가 고장나고 오염되고 부딪쳐서

망하는 게 아니라 아름답지 않아서 망할 건데,

 나는 우리의 유쾌함과

 기쁨과 

 사랑이 그것을 유예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어.     

시를 쓰고 난 다음에는 친구들을 웃겼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것은 혼자 하고, 사람들과는 기쁘고 유쾌했습니다. 망해버릴 내 세상이 안전해야 하니까요.     

 생일날에는 누구나 죽고 싶은 줄 알았다 는 신용목 시인은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까요? 신용목 시인의 시에는 ‘비’가 자주 등장합니다. ‘비’는 왜 눈물이 떠오를까요? 왜 슬픔이 떠오를까요? 입으로 소리 내 보고 시어들을 입속으로 굴리다 보면 알 것도 같습니다.      

       유기     

 친구가 유기묘를 분양받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슬픔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른다 유기농 먹이를 

구하여 때마다 끼니를 챙기고 적당한 사다리를 세워 슬픔이 

커가는 것을 오래 지켜보는 방법을 모른다     

 슬픔을 몸밖에 꺼내놓고 바라보는 일은 무엇일까 어느

날 슬픔의 말을 다 알아듣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친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새벽마다 

환한 교회 창으로 쏟아지는 통성기도처럼     

 언제부턴가 친구는 내 앞에서 울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날내가 잃어버린 잠은 창문 밖으로 쏟아져

고양이로 태어나는 것 같다

 환하게 벌어진 내 생각의 가장 멀리까지 가 말똥말똥 두어 

마리 새끼를 키우는 것 같다      

신용목의 시를 읽으며 저는 슬픔을 읽습니다. 그리고 제 슬픔을 꺼내놓습니다. 라나와 언니에게는 무엇이 읽혔을까요? 궁금하네요. 

저는 요즘 읽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매일 다른 이야기를 만나며 내 속에 채웁니다. 시를 옮겨 적기도 하는데요. 마음이 매일 펄럭입니다. 

                                               2021년 10월 16일 가을 타는 성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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