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잔 Oct 24. 2021

생활이 끝나는 자리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 시간에 온다> 혜정의 편지 

나의 삶나의 시 -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     

생활이 끝나는 자리     

지금 여기서 사라지는 것이 있다 010번 마을버스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0으로 시작하는 것에는 지워지는 말이 있다

“동식이 기억나?”

사진을 들이밀려 

“얘잖아!”

왜 모두들 동그란 얼굴을 가졌을까

신용묵 <생활사> 중에서     

안녕, 나의 자매들! 우리 셋이 언제 마지막으로 만난 줄 알아? 한 300년은 된 것 같은 아득함에 다이어리를 훑어봤지. 9월 7일이었으니 벌써 한 달이 넘었네. 그 사이 가을은 깊어졌고 나의 인류애는 고갈 직전이야. 내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만큼 메말라서 그럴까. 그날부터 신용목 시인의 시집을 분신처럼 챙기고 출퇴근했는데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어. 그래도 출퇴근하는 틈틈이, 일하는 틈틈이 읽으려 했다는 걸 알아주길!! 솔직히 고백하자면 <비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시간에 온다>에 수록된 시는 내게 시 같지 않았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이형기 <낙화> 중에서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나도 학창시절에는 국어와 문학 시간을 가장 좋아했어. 시험 전날에서야 벼락치기를 해도 국어와 문학만큼은 스스로 알아서 시험공부를 했을 정도였으니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이형기 시인의 <낙화>는 학창시절에 배웠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아. 철부지 어린 시절에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나봐. ‘나도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야지.’라는 다짐도 했었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어서 오게나 고통만이 아름다운 밤에 

지금은 우리가 상처로 서로를 확인하는 때 

지금은 흐르는 피로 하나 되는 때 

벗이여 어서 오게나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

벗이여 어서 오게나 고통에 패인 주름살 그대로 

우리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안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서로의 상처에 입 맞추느니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 건너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

- 김진경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중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전경이 최루탄을 쏘아대고 데모대를 쫓아다니는 ‘문민정부’였어. 얼굴에 쏟아진 매운 기운을 덜어내기 위해 독한 담배를 피우고 곱씹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루이 알튀세르의 <당내에서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될 것>을 읽고 토론하던 때. 군부정권을 몰아냈어도 세상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부당한 세상에 항거하며 분신하고 투신하는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있었지. IMF가 몰고 온 ‘신자유주의’에 맞서야한다고 강의실을 돌고 후배들과 철거촌으로 향하는 게 응당 대학생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졸업반이 되니 나만 보이더라.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지 못할까봐 학회에서도, 동아리에서도, 빈활에서도 도망쳐버렸지..     

나는 조심스레 깨진 조작들을 이어붙였습니다 이가 맞지 않아 사이가 뜨고 

몇 조각은 찾지도 못했지만, 

항아리는 완성되고      

엄마가 하던 대로 물을 부었습니다     

항아리는 금방 우는 얼굴이 되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얼굴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신용목 <액체 인간> 중에서      

나에게 시란 ‘지극히 아름답거나 세상을 반영하는’ 문학이어야 했던 걸까. 지금 다시 신용목 시인의 작품을 훑어보니 ‘슬픔’이 짙어서 읽어내기 힘들었던 것 같아. 그럼에도 단 한 편이라도 내게 닿는 시 한 편은 있지 않을까 휘리릭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액체 인간>에 눈길이 머물렀어. 제목만 보고는 도통 내용을 알 수 없어 찬찬히 읽어 내려갔지. 실제 신용목 시인이 어렸을 때 검고 깊은 어둠을 품고 있던 항아리가 깨졌을까. 나라면 항아리를 깼다고 혼날까봐 덜컥 겁부터 났을 것 같은데, 아니면 깨진 조각을 치우느라 바빴을 것 같은데 시인은 조각을 이어붙여 물을 붓고 우는 얼굴을 만들었다니 시인이 될 재목은 꼬맹이부터 남다른 가봐. 이젠 깨진 그릇을 보면 슬퍼지겠다. 그치?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엄마의 로망 데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