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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Dec 09. 2023

위로가 상처가 되지 않게 2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말아요."

"몸 관리도 하고 여행도 좀 다니고 하면서 사세요."

다행히 등을 토닥이지는 않았다.

만약에 등까지 두드렸다면 그 손을 확 쳐버렸을지 모른다.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거로 답을 대신했다. 분명 '썩소'(썩은 미소)였을거다.


나름대로 나를 염려하고 위한다고 한마디 했을테지만, 위로는 커녕 꾹 참고 있던 화를 부채질했다.

일년에 반이상 해외여행을 다니며 잘 먹고 잘살아 윤기 흐르는 친척언니가 신호등을 건너며 몇초만에 쏟아낼 말이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였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럼 그언니 말처럼 난 너무 빡빡하게 사느라 호의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베베꼬여버린 자격지심 심한 사람이 되버리니까. 

골프약속과 교회봉사 등으로 몸도 맘도 바삐사는 언니에게 그 짧은 호의는 아마도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을거다. 골프를 치며 여유있게 툭 던질만한 말이라 나를 그 수준으로 끌어 올려준 건지는 잘 모르겠다.


2010년에 배추값이 폭등하자 장관 등 정부인사들이 서민의 먹거리 걱정을 두고 잊지 못할 망언을 남겼다.

"배추 값이 오르면 덜 담가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었다. 당시 대통령은 "배추가 비싸다고 하니, 내 밥상에는 양배추로 담근 김치를 올려라" 라는 발언을 해서 갑자기 양배추 김치가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에 엄마도 배웠다며 생전 처음 양배추 김치를 담아 먹을 정도였다. 딱 한번이었지만.

1990년대에도 '배추 값이 비싸니 오이 김치를 담급시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 있었지만, 오이김치를 담아 먹지는 않았었다. 


정치인들이 하도 웃껴서 개그맨들이 사람들을 웃기기 힘들다더니 황당무개한 발상의 전환을 국민이 따라잡기 버겁다. 중국의 황제였던 진혜제 사마충이 흉년으로 백성이 굶주린다는 말을 듣고 "곡식이 없으면 어찌하여 고기죽을 먹지 않는 것이냐?"며 물었다더니, 옛날부터 높은 분들의 대안은 애초에 기대감을 싹뚝 잘라 버리는데 고수들이다.


어쩌면 전혀 굶을 일 없고 너무 잘 먹고 잘 살아 걱정인 윗분들로서는 먹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고 머리가 너무 나쁘게 보일거다. '밥이 없으면 햄버거'를 먹으면 되고,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면 되지 참 말도 많다고 구질구질하게 느낄 수 있다. 세상에 먹을게 지천이고 소식하면 장수하고 건강에도 좋은데 뭐가 문제라고 저리 아우성인지 이해하기 어려울테니까.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보고 먹을게 없으면 라면이나 햄버거라도 먹지 왜 저러고 있냐는 아이들이 독서코칭을 하다보면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도 아이들은 관련 사이트나 책을 보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면 금새 알아듣고 실언을 인정한다. 내가 선생의 위치에 있고 아이들은 배울 자세가 되어 있기에 그나마 수월하다. 

애도 학생도 아닌 머리큰 어른들은 가르칠 사람도 배우려는 마음도 없어서 난감하다. 그들이 주워듣고 아는 것으로 아무리 한심한 발언과 망언을 해대도 막기 힘들다. 그런 어른들은 자신이 기껏 생각해서 한 말이 비난 받거나 무시 당하는 걸 이해도 못하고 참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지지리 궁상을 떨고 살지'라고 비난하며 비웃는다. 딴에는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대안도 내놓았으니 할 도리를 다했다 맘편히 생각하면 그만이다.


한때 내 주변에는 그런 부류의 잘 살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잘 되고 싶었던 내 욕망이 자석처럼 끌어 들이고 끌려간 탓이었다. 만나고 나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뒤돌아서면 나를 비웃는 것같아 찜찜하고 비참해지는데도 오랜 기간 난 그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상처입었다.


내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잘나고 잘사는 사람들 중 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어줍잖은 위로와 무례한 충고로 잊지못할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들 눈에 난 자기관리능력이 없는 그저 살 찌고, 아무렇게나 입고, 여행은 커녕 아둥바둥 살기도 바쁜 부류였을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받을 것보다 하나라도 베풀고 나눠줘야 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고, 괜히 관심주면 부담되고 득될게 하나 없는 상대였다. 그리고 마른가지가 툭툭 부러지듯 그들은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 덕에 난 그들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누가 진짜 내 사람이 될지 분별할 안목과 지혜가 커졌다. 누가 겉으로는 친절을 가장한채 질투와 오만으로 날 깍아내릴지 알아보고, 쓸데없이 끌려가거나 끌어 당기는 일도 점점 없어졌다.

그래도 어쩌다 연락이 오면 무시할 요령이 생기고, 만날수밖에 없는 자리라면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릴 뚝심도 생겼다. 그것도 귀찮으면 안 만나도 그만이다.


내가 변하고 성장했다고 남들도 그럴거라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심각할 정도로 수많은 성인들이 변화와 성숙을 멈추고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꿀 생각을 못하고 산다. 

뻑하면 지역색을 들먹이고, 빨갱이 타령을 하고,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다며 편을 가르고 통념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많다. 있는 그대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옛날에 쟤가 어땠느니 저땠느니 하면서 틀에 가두고 제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과 태도를 전혀 바꿀 생각도 없고, 바꿀 필요도 못느낀다. 


그정도는 전혀 아니라고 본인은 생각하지만, 정도의 차이나 모습이 다를뿐 자기 삶을 기준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대하는 사람들이 너무 흔하다. 그렇지않은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고 만나면 행운일 정도다.

나 또한 그들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믿기도 했다. 그리고 수없이 뒷통수를 맞고 지겹도록 상처입고 또 상처 입혔다. 


너무 단순하고 당연한 것을 깨닫고 휘둘리지 않는데 난 불행히도 많은 세월을 허비했다. 그만큼 나약했고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겉으로는 세보이고 자존심 강해 보였지만 지나치게 예민하고 유리멘탈이었던 난 수많은 가면을 쓰고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야했다.


지금도 가끔 그런 부류의 잘 난 사람들에게 원치 않는 충고나 위로의 말을 듣고 산다.

예전 보다 그 수가 무척 많이 줄어들고 마음근력이 생겼지만, 워낙 사람이 다양하고 변수가 많은 세상에서 여전히 헷갈리고 똑부러지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실수가 적고 가짜를 알아보는 속도가 빨라져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래서인지 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

나이 드는게 좋은 사람은 그만큼 징하게 힘든 과거를 살았기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었다.

그 말을 깊이 공감하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지금이 좋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데, 굳이 힘들었던 과거를 젊다는 이유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혼란스럽고 찜찜하게 만드는 애매모호한 위로나 조언을 거를 수 있는 분별력도 없이 휘둘리고 쉽게 상처 입던 그 시절의 나로 결코 되돌아갈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지우고 아파할 것도 없다. 덕분에 사람 보는 눈을 길렀고,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고, 말하는 법도 깨닫고 배울 수 있었으니까. 뜬금 없는 위로나 무례한 충고를 하는 사람들을 거르는 방법을 알았고, 그런 말에 괜히 감정낭비 않고 살만큼 마음근력도 생겼으니까.  


그래서 지금이 참 좋고 고맙다. 

내가 나를 위로하고 그런 나를 믿고 아껴줄 수 있어서 신기할 정도다.

가만 있어도 콕콕 찌르고 서운하던 마음이 '그럴수도 있지', '괜찮아'하며 잘 웃고 잘 견딜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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