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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의 아재라이프 Nov 06. 2024

예민하고 확고한 취향

오래 쓰는 것, 오래 보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난 14살에 산 폴로카라티를 지금도 꺼내 입고,

1994년에 발매된 가방을 일본 빈티지샵에서 찾아내서 도금&수선해서 들고,

(12살에 사고 싶었던 가방인데 32살에 가지게 됨)

단종된 차모델인 Audi TT를 아직도 내 드림카로 꼽는다.

연애도 한번 만나면 장기연애고(내 맘에 드는 남자 아니면 아예 집 밖엘 안 나감)

립밤도 마음에 들면 똑같은 거 5개를 사서,

이것보다 더 나은제품을 발견하기 전까진 바꾸지도 않는다.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은 20년째다.

직업적 목표도 고1 때 정해서 10년 걸려서 정말 이뤘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신중하게 선택해서,

내 라이프에 들인다.


이게 이해가 안 된다면,

본인을 모르거나

취향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까지 해야겠냐'라고 묻는다면?

'내 이상형 한 명과 결혼 vs 마음에 덜 드는 이성 10명과의 결혼'을 생각해 보면 된다.


무조건 나는 Quality이다.

내 취향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택한다.





색감과 소재, 실루엣이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과하다 생각해서 한 달 정도 고민했다.

택도 안 뗀 채로 수선을 맡겼고,

그 자리에서 입어보면서 맡겼다.


어깨끈을 너무 댕강 잘라놔서 입을 수가 없다.


어깨끈 수습하라 다시 맡겨 놨더니,

등 쪽으로 끈을 덧대어 놨는데, 까슬거려서 입을 수가 없다.

(지금 입고 있음)

.

.

.

홧김에 버려버릴까 하다가 등외에 피부에 닿는 촉감이 좋아서 글을 쓴다.

.

.

.

내가 분노한 포인트는 2가지인데


1. 내가 요구한 만큼 수선 안 하고, 자의적 해석 넣어서 망쳐놨다.


원래부터 드레스 단독으로 입을 생각이 없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입으려고 산옷인데,

가슴보인 다고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처럼 어깨끈을 잘라 암홀을 키즈옷만큼 만들어놨다.

내가 요구한 만큼만 수선하면 되는데,

앞에 파였다고 더 댕강 잘라놓은 게 분명한데, 이건 심증만 있다.

평소에 입던 나시와 암홀사이즈를 비교해 보면 진짜 코웃음이 난다.

암홀이 너무 작아서.



2. 수습 후에 '등부분이고 어차피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안 보이니 괜찮다.'는 논리가 아주 틀렸다.


딴사람 보기에 이쁘고 적절해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입었을 때 내 피부에 닿는 촉감이며, 사이즈가 편안해야 하는데. 지금 불편하다고.

남보기에 예쁜 게 아니라, 이 옷을 입는 내가 불편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데, 입는 내가 불편하다.


이 논리로 치면,

속옷은 펑크 난 거 입고, 겉보기 코트만 명품 입으면 된다. 그 논리 아닌가?

왜 배우자 고를 때도, 인성 개차반인 거 고르고, 겉보기에 멀쩡한 화류계애들 고르지?

사장 안 볼 때, 일도 대~충하고, 보일 때만 엑셀 켜놓지?

제품 출시할 때 그냥 용기만 바꿔서 다시 내놓고, 제품컴플레인 들어오든말든 대충 팔면 되는 거 아닌가?

냉장고만 신상 쓰고, 안에 음식물쓰레기 넣어놓으라는 논리인가.


내가 골라 입은 내 옷이편해야, 상대방이 느끼기에도 편한 건데.

내가 지금 입었을 때 불편하면, 이게 나를 위한 옷인지 너를 위한 옷인지.



수습으로 무마하는 마인드 짜증 난다.


반면교사로 삼자.


1.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이행한다.

문제가 될 점을 미리 언급하고 고객의 의견을 듣는다.

명확하게 고칠 수 없다 생각하면,

차라리 솔직하게 이런이런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의견을 다시 듣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좋은 방향이 있다면 제시하고 의견을 듣는다.

설루션 제시 후에 받을 컴플레인도 미리 생각하고,

컴플레인받으면 어찌 대처할지도 미리 생각한다.

컴플레인 안나올 정도로 아예 처음부터 높은 수준인게 제일 좋고.


2. 보이지 않는 곳까지 최상의 Quality를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한다.

장인정신. 명품. 한 끗 차이.

디테일에 집착하면 최종적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 디테일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유형상품이던, intellectual property이던, 프로덕트의 퀄리티가 뛰어나야 함은 당연하고

내가 내놓는 서비스도 뛰어나야 하고,

세일즈를 하며 쓰는 언사, 애티튜드, 내 눈빛도 High quality여야 한다.

고객이 보기에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서,

내가 정해놓은 내 수준이 내 성에 차야 한다.

나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기준잣대를 높이면,

인생퀄리티가 높아지고, 사고방식이 높아지고, 상방이 열린다.


3. 실수는 할 수 있다. 두 번까지도 실수이지만, 세 번부터는 고의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감정적 사과부터 먼저 하고,

사후 일처리에 대한 것은 말끔하게 처리한다.

아예 뒷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10만 원짜리 팔아서 100만 원 피해보상해야 하면 '한다.'

나는 오늘만 살고 죽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나는 책임이 없는 말단 직원이 아니고,

내가 선택하여 자신 있게 내놓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그리고 잘못되고 실수한 것에 대해서도 모든 책임을 진다.




내 장점이자 단점인 예민함이 오늘은 보르도색 슬립드레스로 나타난다.

감각발달형이라 오감이 예민한 편인데,

예민한 능력 일백 분 활용해 더 잘 살아간다.

(나 자신에게 예민한 거지, 타인에게 예민하게 굴지는 않는다. 그러지 말자)


수선집은 이미 바꿨고,

다른 명품수선집들에 한번 더 들고 가서 해결이 안 되면,

('윤아 성격상 안 입을 거 같고'.........)


1. 이 일이 계속생각나서 똑같은 옷 사봤자 해결안 되니 다른 옷을 사던가,

2. 계속 입고 싶으면 똑같은 걸 구입하던가.




이 세상 모든 것엔 일장일단이 있다.


예민하다=섬세하다=꼼꼼하다=완성도가 높다 <-> 피곤하다=깐깐하다

만만하지 않다=꼬시기 힘들다 <->내 남자 외엔 남자취급을 안 한다=아무한테나 끼 안부린다.


사람이 내실이(안 보이는 본질) 튼튼하면 밖으로도 빛나는 법이다.

내가 여유 있어야, 상대방도 여유를 느껴 내 곁에 머무르고.

내가 긍정적이야, 상대방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거고.

내 언행이 현명해야, 내 삶도, 내가 영향을 끼치는 너의 삶도 잘 풀리고.

내가 입은 옷이 편안해야, 상대방도 내가 편안한 걸 느낀다.

(특히 속옷)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예민하고,

앞으로도 나 자신에게 예민하게 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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