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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Jul 08. 2024

탕수육은 없어도 괜찮아요.

©Pexels/마라도 선착장에서 섬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안승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는 몇 번 가 봤어도 마라도까지 갈 일은 없었다는 내 말을 들은 아내가 곧바로 나를 선착장으로 안내했다. 가고 싶어도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그곳의 방문이 다행히 내겐 허락되었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오르막길을 오를 우리를 걱정한 아내의 지인분께서는 전동카트를 몰고 마중을 나와주셨다. 덜컹거리는 시골길의 굴곡이 온전히 느껴지는 허름한 전동차였지만 섬 안에서만큼은 이보다 더 좋은 이동 수단도 없었다. 짐도 싣고 몸도 싣고 너무도 편안하게 해변을 느끼며 섬을 돌았다.


성당은 전복 모양으로 지어져 있었다. 껍질의 오돌토돌한 부분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되어 영롱한 빛을 내부로 뿜어냈다. 바다 멀리 보이는 등대도 기묘하게 뻗은 해변의 절경도 성당의 외관도 나 스스로는 볼 수 없었지만, 뭍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교통수단과 건물의 외관 설명만으로 먼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실감을 하기엔 충분했다. 


점심은 짜장면과 짬뽕으로 정했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어느 광고 문구로 유명한 마라도 짜장면이 실제로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해산물 가득 담긴 짜장면은 또 한 번 내가 있는 곳이 최남단의 섬임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탕수육도 시킬까요?”라는 내 말에 사장님은 “여기는 육고기가 귀해서요.”라고 죄송해하시며 이전에 중국집 메뉴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해산물 모듬” 메뉴를 권해주셨다. 갓 잡은 뿔소라와 생전 처음 보는 긴꼬리뱅에돔이 절정의 싱싱함을 담고 나왔다. 육고기가 없음을 거듭 미안해하시는 사장님의 말씀과는 달리 육지에서 온 내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사진 설명: 왼쪽 동그란 접시에 담긴 싱싱한 뿔소라회, 오른쪽 나무 접시 위에 올려진 긴꼬리벵에돔회)


한두 점을 채 먹기도 전에 참지 못하고 소주를 주문했다. “그러면 그렇죠? 이 좋은 안주를 놓고 어찌 참으시겠어요?”라는 사장님이 들고 나오신 것은 마라도에서는 귀하디귀한 '참이슬'이었다. 육고기를 챙겨주시지 못한 미안함의 표현으로 가장 귀한 것을 내어오신 것 같았지만 그날 내게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사장님이 늘 흔하게 드시는 지역 술을 내어주셨다면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그 또한 귀한 마음이기에 꿀꺽꿀꺽 삼켰다. 짜장면과의 조합으로는 처음 먹어보는 싱싱한 해산물의 조합이 여행의 즐거움을 극으로 치닫게 해주었다. 미리 숙박까지 계획하고 방문한 섬이 아니었던 터라 이른 막배를 타고 우리는 제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달랐던 그곳이라 한 걸음 한 걸음의 경험들이 새로웠고 그래서 소중한 아쉬움이 남았다. 고급세단이나 튼튼한 SUV는 아니었지만 섬에서만 탈 수 있는 전동카트라 좋았다. 단단하고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그런 성당이 있었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육고기가 귀했던 현지 사정 덕분에 탕수육보다는 몇 배나 귀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섬에 사시는 그분들은 때때로 육지에 사는 우리들의 음식과 삶의 모양을 동경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섬과 그곳에 사시는 분들은 그 다름으로 충분히 귀하다. 낯섦과 다름의 크기가 클수록 우리에게 인상적인 여행이 되는 것은 많은 다름을 안고 사는 우리들이 각자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마라도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섬이기에 아주 다르고 그래서 아름답다. 극단적 다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도 그들이 가진 각자의 다름만으로 충분히 독특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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