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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Jul 22. 2024

맥주광고는 비하 의도가 있었을까?

©카스 웹사이트/시원해보이는 배경에 맥주 캔과 병이 놓여있다.

동네 호프집 광고판에 ‘가슴이 뻥 뚫리는 맥주가 준비되었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붙었다. 연일 습하고 더운 날씨에 지친 사람들을 모으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문구가 있을까 싶을 만큼 시의적절한 끌림이다. 그런데 만약 실제로 가슴이 뚫리기라도 한다면 그건 사장님이나 고객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런 카피 문구를 사용할 때 혹시나 모를 두려움을 느낄 사람들을 고려해서 조금 더 순화하는 표현을 써야 했던 걸까?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가족이나 전쟁터에서 가슴에 총을 맞은 전사자의 가족들은 가슴 아픈 실제 상황을 가벼운 비유법으로 사용했다면서 수치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얼마 전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발언을 한 국회의원이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비하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발언이 쟁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저런 발언을 들은 장애 당사자나 그 가족들은 실제로 비하의 의도를 느끼고 화가 났을까? 그런 사람이 아예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장애 당사자는 자신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느끼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발언이 맥락상 자신을 비하할 의도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안다. “당신이 발달장애인입니까?”라고 직접적으로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발언이 아니라면 비하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넓히는 것이 오히려 당사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난 보이지 않는 눈을 가졌지만 “그렇게 시야가 좁아서야 되겠습니까?”라든가 “당신은 뵈는 게 없습니까?”라든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사람 같으니라고!”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나 같은 이들을 빗대어 비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라는 욕을 하는 사람들이 반려견을 비하할 의도가 없는 것처럼 시야가 좁으니 뵈는 게 없느니 하는 사람의 대부분도 나 같은 이들을 조롱하려는 생각에서 그런 문장을 내뱉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거친 남자 녀석들 사이에서는 ‘개××’가 애칭이 되기도 하고 감정 상한 이들 사이에서는 심한 욕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나는 이들이 “우리 집 멍멍이를 지금 비하하시는 겁니까?”한다면 오히려 억지를 부리는 우스갯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강아지가 스스로 그 욕의 당사자로 지목당하는 데 대해 더 기분이 나빠서 한 번 짖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어디서나 고운 말만 사용한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냐마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 상태와 그에 따르는 표현들은 거칠어지기도 하고 욕을 생산해 내기도 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강아지나 열여덟 같은 육두문자를 쓰기도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나쁜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네가 선생이야?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


“네가 검사냐?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상황이 특정 직업이나 특정 장애를 비하할 의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사나 교사 집단에서 이런 상황을 두고 비하 운운하지 않지만, 장애 관련된 사람 중 유독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는 것이 사회 전반적으로 왜곡된 장애인식이 만연되어 있음에 근거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장애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조심해야 하는 성역으로 두는 것은 그 예후가 가히 좋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앞에 있는 물건도 잘 찾지 못하는 이에게 “너 안 보이냐?”라는 표현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 같은 이에게 “안 보여서 이것도 못 하냐?”라고 직접적인 비하의 목적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에게 좀 더 자유롭게 언어를 선택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어쩌면 가벼운 농담이라면 나에게도 “뵈는게 없냐?”라고 농담도 할 수 있는 것이 언제나 장애를 성역으로 두고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이들에게 “정신 나간 소리 하고 있네.” 소리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은 너무 빡빡하다. 그것이 정신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더 어렵고 불편하게만 될 뿐이다. 모든 비하를 옹호하려는 의도까지야 없지만 자기들 싸움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유난히 장애 감수성 예민한 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 동네 맥주집 사장님의 간판부터 내리라고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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