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제자들의 고민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다. ‘어느 대학을 갈 것인가?’ ‘대학을 갈 수는 있을 것인가?’ ‘어떤 전공을 택해야 하는 걸까?’를 고민하는 고등학생들도 그렇지만, 취업을 고민하는 대학 졸업생들의 연락이 가장 빈번한 것도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대학 고민, 취업 고민이야 현재를 사는 모든 청년의 대표적 공통 과제이겠지만 앞 못 보는 제자들에겐 그 걱정의 깊이나 고민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되지!’ ‘앞 못 보는 게 뭐 큰 장애야? 조금 다를 뿐이지!’라고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낙천적인 녀석들마저 절대 만만하지 않은 사회 진입의 턱 앞에서 온몸으로 장애의 무게를 느낀다.
‘나는 세계적 음악가가 될 거야!’ ‘난 시각장애인 최초의 파일럿이 될 거야!’ ‘앞을 보지 못한다고 의사가 되지 못 하란 법은 없잖아!’라고 당당히 외치던 녀석들의 꿈이 급격히 공무원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졸업에 가까워지는 바로 그 시기이다. 극도의 불안함은 안정을 쫓고 현실적 결론은 모험보다는 안전한 길을 향한다.
마흔 넘어가는 내 또래 친구들의 주된 고민은 그와는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대체로 안정된 직장과 평범한 가정을 꾸린 그들은 지나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기력을 느낀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어제 같은 오늘을 사는 친구들은 색다른 도전을 꿈꾸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힘들어한다.
생각해 보면 그 녀석들도 20여 년 전엔 내 제자들처럼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했고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했다. 그들이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오늘은 언젠가 그들이 꿈꾸던 안정적인 미래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벌 수 있고 좀 더 나은 집에서 산다면 얼마나 더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것 살 수 있는 지금만큼 보장되어 있었다면 20년 전의 친구들은 그토록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신하건대 이 친구들에게 또다시 도전의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안정을 꿈꾸며 현재를 불안해할 것이고 머지 않아 취업하고 가정을 꾸릴 나의 제자들도 안정한 현실을 벗어날 새로운 불안정을 찾을 것이다.
적당한 안정 속에서 적당한 새로움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말하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하지 않게 일하고 적절한 쉼과 무리하지 않을 만큼의 자기계발이 있는 이상적 워라벨이 며칠쯤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오래 가지 않아 안정이 되고 일상이 되고 지루함이 된다. 설렘 가득한 새로운 도전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지속은 결국 불안이 된다. 현실의 삶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절대적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만족은 사실의 영역이 아닌 인식의 영역이다.
인간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지만 우리는 다름을 쫓는 가운데 현재가 가지는 가치에 만족해야 한다. 삶은 불확실과 안정의 순환적 구조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와 반대되는 또 다른 현재가 오더라도 또 다른 반대만을 쫓느라 허우적댈 것이다.
나의 제자들이 다른 걱정 없이 무한히 꿈꿀 수 있는 지금을 즐길 수 있기를 응원한다. 또 내 친구들이 안정된 직장과 평안한 가정을 여유있게 누릴 수 있는 편안한 어른이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