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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품은 남자

by 안승준

태어난 지 백일쯤 된 아기의 일상은 먹고 자고 싸는 일의 무한반복이다. 아기가 울고 있을 때 돌보는 이가 그중 한 가지의 욕구를 해결해 주면, 아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정을 찾는다. 하나쯤 더 추가한다면 자신의 힘으로는 누워만 있을 수밖에 없는 본인을 일으켜 달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패턴이라 아기를 돌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이도 있겠으나 기껏해야 사지선다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기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먹고 싶은 것인지 자고 싶은 것인지 기저귀가 젖은 것인지 일어나서 놀고 싶은 것인지의 판단은 아무 근거 없이 찍더라도 25%의 성공 확률은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울음은 졸음 때문이라고 짐작되지만 안고 어르고 달래도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기저귀를 풀어보아도 아직은 뽀송뽀송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다. 앞이 보이게 번쩍 안아 들고 아빠의 재롱을 보여준 뒤에야 아기는 안정을 찾는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우는 아기에게 아빠는 기저귀를 열어보고 안아 들고 재워보고 하는 시도를 반복하지만, 이번엔 젖병을 물고 나서야 안정이 된다. 1번을 찍으면 3번이 답이고 3번을 찍으면 4번이 답이었던 어느 날의 시험처럼 아기와의 소통은 헛짚기의 연속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넉 달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은 처음보다는 우리의 호흡이 맞아가는 듯도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초보 아빠의 아들 욕구 알아채기는 시행착오의 반복이다. 어젯밤에도 잠이 들지 않는 아들을 끌어안고 재우려는 아빠와 잠이 들지 않는 아들과의 짧지 않은 협상 테이블이 열렸다. 결과는 아빠의 포기와 추가 분유의 보급, 그리고 나서 안정을 찾은 아기의 꿈나라 도착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아빠와 엄마는 아기를 재우려는 시도를 한다. 태어났을 때도 50일쯤 지났을 때도 백일이 넘은 지금도 그 시도는 계속된다. 모든 신생아 부모의 목표이자 꿈인 통잠자기를 실현하기 위해서인데 원하는 만큼 연속된 시간 동안 아기를 재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나름은 잘 자는 편인 햇살이지만 초저녁부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잔다는 어느 집 아기의 이야기를 들은 뒤엔 재우기 목표와 현실과의 틈이 더욱 벌어졌다.


“어제는 11시부터 7시간은 잤지만, 오늘은 조금 더 길게 잤으면 좋겠어.”


“오늘은 기적처럼 9시간을 잤지만, 잠드는 시간이 2시간만 앞당겨졌으면 좋겠어.”


편안하고 안정적인 수면은 아이의 성장과 지능 발달에 굉장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여러 학설을 되새기며 매일 밤을 재우기 전쟁으로 채우는데 그 목표와 아기의 욕구가 정확히 일치하게 되는 동기화의 상황이 올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그리 높지 않다.


아직은 길지 않은 육아 경력이지만 고백하건데 아들이 가장 예쁠 때 중 하나는 자고 있을 때이다. 하루 중 내가 아들에게 가장 많이 시도하는 육아 기술도 재우기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기를 재우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의 편안함을 위해서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신생아가 충분히 자야 하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아기는 더 자야 하니 재우겠다.’는 나의 욕구가 과도하게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밥을 좀 더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식사량이 부족한 것 같은데!”9라고 아내에게 이야기할 때도 아들의 키와 몸무게가 빨리 자랐으면 하는 아빠의 욕구가 적지 않게 묻어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안아서 달래는 것보다는 젖병을 물리는 것이 조금 쉬운 강도의 육아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다시 한번 이야기 하자면 난 아들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 누구보다 좋은 방법으로 훌륭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다. 그런데도 아주 조금은 아이를 달래는 과정에서 아기의 욕구 아닌 내 욕구가 본능적으로 섞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작은 아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자평한다. 아들은 나를 보면서 소리 내 웃기를 시작했고 내 품에 안기면 뒤척이는 시간 없이 잠들기도 한다. 아직도 정해놓은 시간에 맞춰서 젖병을 물었으면 좋겠고 이른 저녁에 잠들어서 늦은 아침에 깨어났으면 좋겠지만 그 안에서 아기의 소리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려고 노력한다.


심하게 배고파하는 아들에게 오늘은 예정된 용량을 초과하여 한 번의 식사를 더 제공하였다. 까르르 웃으면서 늦은 밤까지 잠 못 드는 아들과 재우기 대신 놀아주기를 해 주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오늘의 햇살이는 특별히 안정적으로 보인다.


나도 어느 날인가는 유난히 배고픈 날이 있고 과하게 놀고 싶은 날도 있다. 내가 매일 그렇지 않은 것처럼 아기도 대체로는 그렇지 않다. 아기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햇살이가 내는 작은 소리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된다.


오늘도 “졸리니? 배고프니? 기저귀가 젖었니? 놀고 싶니?”의 물음 속에 내 욕구보다 아이의 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햇살이와 교감하는 시간을 통해 난 이제야 진짜 사랑을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워가고 있다. 햇살이와 나의 동반성장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작은 공간을 마련했으니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https://youtube.com/channel/UCMAM7y-TJEac_dMSdj8qSaQ?si=25VHldn8_5JVPL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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