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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의 의미

by 안승준

연말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강연회에서 초대장이 날아온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에게 있어 언제나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자리를 좋아하기도 해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참석하는 편이다.


강의마다 주제도 내용도 다양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강연 구조의 대부분은 현재의 강연자가 있기까지 그가 겪은 과거 사건들의 나열과 인과관계의 확인이다. 무대에 서 있는 이들이라면 대체로 청중들이 부러워할 만한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엔 약속한 듯 힘들고 아픈 과거가 존재한다.


어찌 보면 뻔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서사구조는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고통의 시간은 필수라고 말하는 듯한데 진실성 보증된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라는 데에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바람 없이 자라난 고목이 없고,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 아이는 없다. 우리는 그것을 나이테라고 부르고 면역이라고 설명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들에게 재력은 누구보다 절실한 목표가 되고 어려운 가정사는 그가 전진하는 동력이 된다. 허약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운동은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살아가는 내게도 다른 이들의 평범함은 부단히도 갖고 싶었던 삶의 방향성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현재가 있기까지는 지나온 모든 일들이 의미 있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그때는 몰랐어요."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힘든 만큼 더 큰 결실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입에 발린 위로 이상으로 느껴지기는 어렵다.


가난한 이에게 그것이 너를 부자로 만드는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말하거나 허약한 이에게 너의 절실함은 넘치도록 건강한 몸으로 가는 보증수표라고 말한들 어려운 현재가 성공할 미래를 만들어낼 의미이니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처음 실명했던 내게 보이지 않는 눈이 내가 잘 사는 어른으로 자라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면 나 또한 상대에게 좋은 표현을 되돌려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강연자는 꽤 괜찮은 현재를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로 현재와 정반대 편에 있었던 힘들었던 과거를 꼽는다. 그것은 많은 강연자들이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흔한 스토리라는 면에서 어쩌면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핵심이다.


처음 보이지 않았을 때부터 내게 주어진 실명의 의미에 대해 내가 좀 더 정확히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에게도 그때의 나에게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지금의 어려움이 미래의 기쁨으로 가는 의미 있는 과정임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강연자들 또한 좀 더 나은 지금을 살고 있을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든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라든가 하는 말들은 우리가 듣기에 너무나 흔하고 뻔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내뱉고 또 내뱉어서 지겨울 정도로 들었는데 이번 연말의 강연자들도 또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진리라는 증거이다. 우리가 겪어내는 지금의 모든 순간은 우리가 바라는 그때가 되기 위한 중요한 의미의 시간이다.


지나고 나서 아는 것도 좋지만 지나고 있는 지금 알아낸다면 더 좋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프고 힘든 모든 순간은 우리가 나아지는 귀한 의미가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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