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딸린 주택에서 전원생활
평생 다니던 교단을 떠났다.
마침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된 각급 학교들이 방학처럼 쉬고 있어 은퇴했으면서도 방학의 연장처럼 지낸다.
그리고, 봄이 왔다.
산수유가 피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하얀 목련꽃이 큰 봉오리를 열고 드레스 입은 신부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들녂엔 농부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겨우내 방치해 두었던 비닐들을 걷어내고 밭갈이를 하여 작물 심을 준비를 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계절은 정해진 순서대로 바뀌어간다.
세상사는 여일한데 내 시간에만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총총거리던 아침 시간이 느긋해졌다. 요일과 날짜 개념이 없어졌다.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것만 같다. 내게는 쓸모가 없어진 괜한 악세사리처럼 여겨진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퇴임 이후의 달라진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 야심찬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만 '소확행(小確幸)'을 찾아 보려던 나만의 작은 소망들이 뜬금없는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모조리 발목을 잡혔다.
다니던 수영장도 문을 닫았고, 입문하려던 도서관도 언제나 개방될 지 묘연하다. 즐겨 다니던 여행은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근 채 금지되어 이제는 다녀온 여행지들을 더듬어보며 추억만으로 마음 속 여행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어수선한 시국에서도 특별히 사회적 거리두기에 역행되지 않는 '운동'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등반과 자전거 라이딩으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려는 계획은 미루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지리산 천왕봉과 모악산은 나의 헬쓰장이며, 삼천천을 휘돌아 가며 잘 뚫린 자전거 길은 이제 나와 친숙한 산책길이 될 것이다.
내게 또 하나의 변화는 준비된 작은 보금자리에서 펼쳐 나갈 새로운 삶이다. 우뚝 솟은 모악산을 뒤로 하고 앞쪽에 구이저수지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호수마을. 초현대식으로 지어진 모양새가 각양각색인 다양한 주택들이 늘어선 마을은 얼핏 건축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그런 화려한 주택 숲 속에 앙증맞게 지어진 조그만 오두막 한 채가 덩그렇게 놓인 빈 터에 자리를 잡았다. 작긴 하지만 끼니를 마련할 공간도 갖추었고, 아늑한 침실도 있으며, 나를 가장 포근하게 안아줄 작은 서재도 마련되었다.
2도(都) 5촌(村).
1주일 중 2일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이곳에서 나머지 나날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동안 우왕좌왕 정신없이 살았던 직장에서의 소란했던 삶의 여정을 끝내고, 이젠 조용하고 여유롭게 마음이 말하는 행복을 찾아 나설 터이다.
소박하고,
건실하고,
마음 편한 삶을 활짝 열어 젖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