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을 떠나며
80년대 초, '응팔'보다 이른 시대에 교직에 첫발을 들인지 38년만에 은퇴를 맞이했다.
교직자이셨던 부친께서 퇴임하신 지 꼭 27년만에 어느새 내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부친의 권유가 있었던 건 아닌데도 어려서부터 미래의 진로가 교직이어야 되는 줄 알고 자랐고, 이윽고 자연스럽게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그리고, 교직자인 아내를 배우자로 맞아들여 든실한 교육가족을 이루어 살아왔다.
콩나물 시루 같던 다인수 학급의 교실에서 조개탄으로 난로를 피워 추위를 피하고, 선풍기는 커녕 손부채로 찜통 같은 무더위와 씨름하고, 괘도를 걸고 막대기로 가리키며 수업하는가 하면, '가리방'이라는 등사기로 인쇄하여 고사를 치르던,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같은 시대에 교직을 시작하여,
이제는 교실에 히터, 에어컨, 레이저프린터, 복사기까지 설치되고, 괘도는 ppt가 대신하는 등 기존의 교실 풍속도를 모조리 바꾸었고, 손에 때가 묻어 찢어질 듯 뭉개진 사전이 공부의 관록을 자랑하던 영한사전은 스마트폰이 대신하고, 디지털교과서, 어플, 와이파이를 이용한 온라인 학습 등 외계인들이 쓸 것만 같은 신기한 문물들이 교실을 지배하는 첨단시대를 살게 되면서 교직을 떠난다.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건대, 교직생활 중 특별히 이루어 놓은 건 없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후회스럽지 않은 삶이었다고 회고해 본다.
책가방을 메고 교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출근하는 아침 등굣길은 늘 행복이었다. 공부가 끝나면 복도로 쏟아져 나와 왁자지껄 떠들고 꺄르르 웃어 제끼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듣는 일 또한 행복이었다.
이제는 이러한 일상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아직 교직원들과 정식으로 송별인사를 나누기도 전인데 우리 자녀들이 아빠에게 학교로 보내온 축하 꽃바구니를 먼저 받았다. 부족한 아빠지만 항상 무한 신뢰를 보내고, 변함없이 의지하며 잘 자라준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기 그지 없다. 그 아이들이 아빠에게 보내준 축하는 평생의 피로를 단번에 불식시킬 만큼 한없이 달콤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