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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an 05. 2022

침대에서 두 시간을 뒤척거리다 마늘을 깠다.

잠들지 못한 밤에 대한 일기

아, 얼른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때가 종종 있다. 나 답지 않은 일이다. 

식탁 창가에 햇살이 가득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주방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남은 커피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 목재를 만지작거리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아침이 되면 그런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고 이불속에서 조금 더 밍기적거리다 겨우 거실로 나와 한참이나 나를 기다린 보리와 구름이에게 잔소리를 듣게 되긴 하지만. 


그래서 요즘은 잠자리에도 일찍 (새벽 1시 이전) 들고 일찍 (오전 9시 전후) 일어나는 편인데 어제는 한시가 되기 조금 전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한참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오래 붙잡고 있은 것도 아니고 윗집의 소음이 유별났던 것도 아니다. 그냥 열심히 잠을 청하다가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한 시간짜리 수면용 배경음악이 한번 끝났고, 그 음악이 끝나니 머릿속이 그간 하던 생각에 오늘 저녁에 문득 들려온 음악 (심지어 헤이마마)까지 섞여 난장판이 될 지경이라 그 음악을 한번 더 재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음악 소리가 또 끊겼다. 새벽 3시 14분이었다. 


침대에서 보낸 두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생각들을 했는가 하면 특별한 것도 없다. 가을 아침에 대해 생각하다가, 재미난 학교에 대해 생각하다가, 수정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곳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의 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수필을 한 편 써 내려갔다가, 그때에도 이렇게 잠 못 드는 긴 밤이 많았는지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럴 수가 없었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박봉을 받으며 고되게, 오래 일해야 했을까... 아이들의 귀여운 장난에도 웃을 수 없을 만큼 피곤에 절어 살아야 했던 많은 업무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도 대안학교 교사들은 그렇게 일하고 있을까. 계속 그렇게 일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가 수면장애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잠 못 드는 때의 내 머릿속은 너무나 산만하고 산란해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는 했는데, 문득 adhd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잠을 자려고 478 호흡법이니, 명상이니 도전을 해 봐도 얼마 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끌려다니게 되는 게, 아마 수업/공부에 집중하길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이런 느낌을 겪는 건 아닐까. 그러면 나는 일시적, 취침 전 한정 adhd 상태인 건 아닐까...?


그래, 내가 듣는 정신과 팟캐스트에 사연을 보내봐야겠다. 어디까지 자세히 쓰는 게 좋을까. 밤에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 번개가 치듯이 어떤 생각들의 단면만 수십 개가 스쳐 지나갈 때도 있는데 그것도 써야겠다. 어쩌면 정신과 의사는 내가 증상을 말하면 잘 이해해줄 수 있을까? 아 맞다, 밤에 자려고 하면 다음날 하고 싶은 일이 수십 개가 떠올라 리스팅을 하고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 일을 시작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각성상태가 되는 것도 뭔가 뭔가 증상의 하나일지도 몰라. 조증 같은 것과 비슷하려나? 경경경조증 정도로 분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며칠 후, 남편이 나에게 약간의 조증 상태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해서 함께 웃었다.)


그러다가 조울증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처음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던 아홉 살의 어느 날에 대해 생각했다. '쌍둥이 옆집'에 살다 이사를 간 '하늘이 옆집', 그다음의 '신명 아파트'의 안방 침대에서 무선전화로 긴 통화를 마친 엄마가 '쌍둥이 엄마가 우울증이래' 하고 말했던 순간. 우울증은 아주 오래,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없이 우울한 거라고 엄마가 말해주었다. 아줌마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때의 나는 쌍둥이 엄마보다는 내 친구들이었던 쌍둥이, 혜원이와 경원이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으므로 그러면 쌍둥이들이 좀 힘들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을 하는 동안 두 번의 수면용 배경음악이 끝나버렸고 더 누워 있어 봐야 같은 음악을 세 번째 들으며 생각을 이어갈 것만 같아서 거실로 나와 주방 등을 켰다. 고양이들은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이 시간에 밥 주려고 나온 거야..?? 그렇다면 먹을게' 하는 느낌으로 밥그릇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주방을 둘러보다가 마늘 한 줌과 과도를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글을 쓰고도 싶었지만 머릿속이 소란해서 아주 나중에나 가능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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