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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Oct 27. 2022

요가의 마음, 마음의 요가

 며칠 전 손목에 무리가 온 것 같다고 느낀 다음날 손목을 아주 많이 쓰지 않는 한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에 두 시간 가량 볼더링을 했고, 볼더링 후 간식을 먹는 동안 몸이 식으며 다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어 수업에서 하이 플랭크나 푸쉬업, 아령을 드는 동작에서 왼쪽 손목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동작을 대체하거나 수정해 운동했고 그 이후로 삼일 째 손목을 최대한 덜 사용하려 노력중이다. 물론 오늘도 양파 두 개와 당근 한개를 채 썰고 (애초부터 며칠 전 손목에 무리가 온 것도 칼질 때문), 주물 냄비를 들고 옮기고 설거지하고, 소스를 젓고 소분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손목의 가동범위를 제한하며 살았던 적이 있나 싶도록, 손목 보호대에 부목까지 달아 손목이 좌우로 각 20도 이상 꺾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요가는 어찌어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요가를 갔다. 지난 어깨 부상 때에도 생각보다 어깨의 움직힘을 컨트롤하며 요가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고 재활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손목도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손목은 조금 더어려웠다. 어깨보다 심하게 조심해야 했기도 하거니와 생각보다 손목의 가동범위가 줄어들며 오는 제약이 많았다. 우선 손바닥으로 땅을 짚을 수가 없으니 엎드린 자세들이 죄다 어려웠고, 손으로 뭔가를 세게 잡을 수 없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도 요가를 하지 않은 것 보다는 몸 컨디션이 좋아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요가는 늘 그렇다. 어지간하면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 보다 좋다. 


 수업 시작 시간에 딱 암장에 도착해서 스튜디오로 올라가니 막 수업이 시작한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강사가 딱 한번 본 대타 강사였다. 저번에 수업을 들었(는데 별로였)던 그 사람이 맞나 긴가민가 해서 조금 망설이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매트를 폈다. 

 매트에서 몸을 풀며 앉아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 강사가 맞았다. 부산스러운 말 습관 때문인지, 좌우를 자꾸 틀리게 말해서인지, 자세 이름을 제 멋대로 말해서인지 여하튼 나와는 안맞는다 느꼈던 강사. 그렇지만 강사는 강사일 뿐이고, 결국 요가는 내가 내 몸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 손목을 비롯한 몸을 잘 살피며 한 시간을 보내겠다 마음먹었지만 손을 신경쓰려니 자꾸 감각이 예민해지고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한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주로 수업 시작 5분 전 쯤 암장에 도착해 자전거를 대고 건물로 들어가 화장실에 들렀다 요가 스튜디오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 거의 딱 정각. 자전거를 타고 서두른 탓에 이미 웜업이 충분히 되어 있지만 정작 요가 수업은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호흡하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내 몸의 컨디션이나 몸이 느끼는 감각에 대해 알아차리는 걸로 시작된다. 

 몸이 조금 부어있거나, 유난히 뻣뻣하거나, 무겁다고 느끼는 날들도 많지만 그로 인한 감정은 잠시 치워둔다. 신기하게도 요가를 할 때에는 내 몸의 한계를 느껴도 많이 답답하거나 불안하거나 조급하지 않다. 웨이트나 클라이밍을 하면서는 '왜 여기서 더 당겨지지 않지?', '왜 힘 주는 방법을 모르겠지?' 하는 식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남과 비교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답답함과 불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 요가를 할 때 만큼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답답함이나 조급함이 거의 없다. 


 아마 '나'에게 집중해야 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다른 사람의 멋진 아사나, 멋진 몸, 멋진 옷에 시선을 빼앗길 때도 있지만 그러면 곧바로 내 몸이 기우뚱거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주로 내 시선은 내 자세에 자연스러운 한 지점에, 또는 내 몸의 정렬을 확인 하느라 거울 속을 향하고 있다. 눈으로 뭘 본다기 보다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에 시각이라는 감각을 사용할 뿐, 실제로 내가 살피고 있는 것은 내 호흡과 내 몸의 감각이다. 힘을 줘야 할 곳에 주고, 빼야 할 곳의 힘은 빼고 있는지. 호흡을 꾸준하고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게 우선이다. 가끔 잘 모르는 자세를 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볼 일도 거의 없어서 남과 나를 비교 할 일도 적다. 


 되던 자세가 안 된다거나 뭔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에도 '지금은 여기까지만 되는구나', '오늘은 여기가 좀 불편하구나' 하며 그 순간의 내 몸에 대해 깨닫고 넘어갈 뿐, '왜 저번에는 이만큼 했는데 오늘은 안될까', '실력이 줄었나, 아니면 저번 그 부상 때문에 그런가' 하는 식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잘 안되면 안되는 대로, 몸을 조금 더 조심히 다루고 살피며 움직이는 걸로 충분하고, 평소보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오늘은 이게 되는구나. 이 자세에서 이렇게 힘이 들어가는 거였구나' 깨닳으면 그걸로 족하다. 안 된다고 불안하고 풀 죽을 것도, 잘 된다고 들뜨고 신날 것도 없이 그냥, 요가매트를 펴기 전보다 조금 더 고요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수업을 마치고 매트를 정리하고 남은 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다. 


 어쩌면 내가 얼핏 배운 마음공부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아 이 사람(또는 이 상황) 짜증나네' 하고 생각할 일을 '내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안들어서 짜증을 느끼는구나' 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본다. 몸이나 마음이 피곤할 때의 나는 평소이거나 컨디션이 좋을 때라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을만한 일에 쉽게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으로 부터 왔는지,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의 물결을 이 만한 크기로 받아들이지만 실제로 그 것의 크기는 얼만큼인지, 내가 평소보다 과민하거나 무디게 반응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찬찬히 생각해본다. 


 어떤 자세가 안된다고 실망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듯, 순간의 기분이 안좋다고 그 기분을 계속 끌어안고 갈 필요가 없다. 기분이 안좋은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은 그 일이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선택을 하면 되니까. 물론 말이 쉽지 현실에서는 하루에도 수 없이 좋고 나쁜 기분과 상황에 영향을 받고 끌려다니지만 우선은 그 것을 알아차리는 연습부터 찬찬히 하고 있다. 

 중학생 때 처음 접했던 마음 공부를 꾸준히 해왔더라면 지금은 많이 익숙해져 있을 지도 모르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십수년간 까맣게 잊고 살다 서른 살이 넘은 지금 다시 하려니 또 아득하다. 그때 조금 더 귀담아 들을걸, 충분히 연습하고 힘을 길러볼걸 하는 후회도 조금 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의 중학생에게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다. 운동도 마음 공부도 조금 늦은게 아쉽지만 더 늦기 전에, 습관을 만들기로 매일 조금씩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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