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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tharina Kwon Feb 06. 2023

습관성 '왜'와 질문 던지기

시선과 감상2-일상 기록


 독일 생활과 철학 공부가 나에게 남긴 것은 '습관성 왜'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소한 질문들은 전혀 심오한 것이 아닐 때가 많다. 유용하지도 그렇다고 해롭지도 않은, 생활밀착형 '왜'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뭐가 어찌됐든 모든 일에는 일어난 원인 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해도 질문을 통해 무언가가 새롭게 보일 수도, 의미있는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질문 폭탄을 던지면 참으로 난처하다. 그게 뭔지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게 왜 그런지는 가르쳐 주기 어렵다. 사실 어른들은 그런 질문들이 귀찮고, 또 궁금하지도 않다.

 물론 요즘은 자연 현상에서부터 사회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검색엔진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 정답을 금방 찾아볼  있다. 그러니 아이들이 부모에게 물어보는 경우는 줄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것이 정말 정답일까? 또 답을 들으면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소될까?


 자연 현상들의 경우에는 자연 법칙이나 과학 이론을 통해서 이미 밝혀지고 해명된 것들이 많다.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서도 이미 설득력있는 이론과 설명들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겪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경험들은 일반화해서 설명하기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충돌은 우리가 생각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머리가 아프니까).

 그래서일까? 우리(어른)는  종종 자신이 직접 겪어본 것만이 사실이고 옳다고 믿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들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체험과 직관은 이렇게 말하는데, 객관적이라고 칭해지는 지식들은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어떻게 한다?


 인간의 인식은 언제나 특수한 경험과 보편적 앎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결론을 내리고 행위를 결정한다. 이렇게 보편과 특수를 매개하는 인식능력을 칸트는 판단력이라고 불렀다. 나는 우리가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판단력과 실천적 지혜를 잘 발휘해야 하고, 이러한 능력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은 답정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질문을 던진다'고 표현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공(질문)을 던지면, 나는 그 공을 잘 받아낸 다음 상대에게 다시 던진다.  실제 대화 상대자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 물음과 답변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고, 그 상대가 나 자신이라면 나는 스스로 묻고 답하며 반성 활동을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묻고 답하고, 주고 받는 과정 그 자체'이며, 최선의 답(최종 답 말고)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이 공놀이에 재미가 붙으면,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질문이 꼭 건설적일 필요도, 꼭 생산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수많은 질문들을 나열하기만 하면 머리가 너무 아프고 복잡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궁금증과 의문점들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단, 자기 부정적인 질문이 아닐 것) 스스로 추론하고 해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질문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거나 깊이 탐구하게 되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자기 밖으로 향하는 질문이든, 자기 안으로 향하는 질문이든, 질문을 통해 아이들처럼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릴케가 말하듯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고, 물음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삶을 잘 살아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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