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지극히 사소한 나의 일상 #6
두 해 전 겨울, 나는 열흘이 조금 넘는 기간을 병실에서 보냈다. 그전에 수술한 난소 종괴가 다시 자라 복막까지 퍼지는 바람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수술이라 걱정되지는 않았다. 작은 슈트 케이스에 이것저것 빠짐없이 챙겨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2인실의 옆자리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아주머니가 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다가 선뜻 내게 리모컨을 넘겨주셨다. '드라마라도 보고 싶을 텐데'라는 아주머니를 향해 나는 방긋 웃으며 챙겨 온 태블릿 PC를 가리켰다.
다음 날 오전, 바퀴가 달린 침대 위에 누워 이동하며 수술실 앞까지 따라오려는 남편을 만류했다. 지난번처럼 두 시간이면 끝날 테니 호들갑 떨 것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엘리베이터 밖에 서서 쳐다보는 남편에게 손까지 흔들었다. 수술대 위에서는 늘 그렇듯 열까지 채 다 세지도 못하고 '하나'에서 이미 기억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어쩐지 시간이 한 참 흐른 느낌이었다. 창문은 없지만 주변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고, 팔에는 지난번 수술할 때는 없었던 수혈 바늘이 꽂혀있었다. 내 곁을 오가는 간호사들도 지난번보다 많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이동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있던 병실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얼굴이 사색이 된 남편이 다가오더니 네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마취가 덜 풀린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얼마 후 수술을 집도한 교수님이 오셨는데 이게 웬걸, 교수님의 얼굴도 사색이었다. 수술 도중에 장에 천공이 생겨 아예 개복해서 마무리할지, 며칠 더 상황을 지켜보고 추가 수술을 해야 할지에 대해 외과 담당과 의견 충돌이 있었고, 이에 급하게 남편까지 호출해서 상황을 의논했다고 했다. 수술실 앞까지 오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남편이 너무 가엾다.
이런저런 기계와 온갖 약물 주머니에 연결된 채 비몽사몽 하룻밤을 보냈다. 중환자실 옆자리에는 호호백발의 할머니와 간병인이 있었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몇 번이고 말을 거셨으나 내가 거의 대답을 못했던 모양이다. 다시 하루가 더 지나갔다. 다행히도 상황이 더 나빠지진 않아 원래 있던 병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리모컨을 양보해 주셨던 아주머니가 퇴원하시고 안 계셨다. 많이 걱정해 주시고 인사도 해주셨다는데, 역시 기억이 없다.
2022년의 크리스마스이브는 내 생에 잊지 못할 날이다. 주치의는 오늘이 고비라며, 열이 내리지 않으면 긴급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 모를 막중한 책임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힘든 시련을 또 안겨주긴 싫었다. 남편은 요 며칠 새 얼굴이 반쪽이었다. 수술을 견디는 쪽보다 혼자 몇 시간이고 두려움과 걱정에 짓눌려 있는 쪽이 더 괴로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재수술을 받지 않았다. 얼음주머니 두 개를 껴안고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영한 <로마의 휴일>을 보는 동안 열은 금세 떨어졌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이 흑백 영화와 마음이 개복치마냥 약한 남편은 내 생명의 은인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세 배는 더 나온 수술비를 선뜻(?) 내준 보험사는 두 번째 은인이다. (2024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