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소한 나의 일상 #10
처음 이사 와서 깜짝 놀랐던 것 중 하나가 길고양이였다. 많아서가 아니라 예뻐서였다. 어쩐 일인지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하나같이 둥글둥글 살이 올라 있었고 털에는 윤기가 자르르했다. 심지어 사람만 보이면 다기와 몸을 비비며 '자, 봐봐, 내가 꽤 예쁘지?'라는 듯 목구멍을 가르릉 댔다. 전에 살던 서울에도 길고양이가 많았지만, 하나같이 삐쩍 마르고 털이 거칠었으며 사람을 경계했다. 골목길에 놓인 쓰레기 봉지를 헤집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꽁무니를 뺐다. 그래서 나도 길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곳에서 나는 전철역에서 집으로 오는 약 십 분 동안 최소 다섯 마리의 길고양이와 만난다. 매번 만나다 보니 부르는 호칭까지 생겼다.
깜장이는 이 동네의 왕이다. 잡털 한 오라기 없이 온몸이 새까맣고 매끈한 이 녀석은 누가 봐도 왕의 자태와 기품이 있다. 깜장이는 곧잘 돌계단의 한가운데에 당당히 누워있다가 사람이 오면 일어나 제 몸을 스윽 비빈다. 그러면 누구라도 이 녀석이 예뻐 못 견딘다. 고양이 계의 아이돌이다.
억울이는 어쩐지 표정이 좀 억울하다. 늘 깜장이가 있는 곳에서 한 발자국쯤 떨어져 있다. 깜장이와의 관계는 아직 잘 모르겠다.
커플 고양이들은 공원의 점령자다. 늘 공원의 벤치 또는 테이블 위에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있다. 어쩌다 한 마리가 안 보이는 날이면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걱정될 정도이다.
누런 점박이는 늘 담벼락 또는 식당 앞 장독대 위의 햇살이 따뜻한 곳에 누워 자고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너무 사진을 찍어댔더니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휙 가버렸다. 이 녀석만큼은 애교가 없다.
지난번에는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 깜장이, 억울이, 커플, 점박이들이 도서관 앞 광장에 모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던 찰나, 몇몇 사람이 오더니 익숙한 듯 고양이 사료를 퍼서 이곳저곳에 놓아주었다. 아! 고양이들의 식사 시간이구나! 비로소 나는 깜장이, 억울이, 커플, 점박이들이 둥글둥글 윤기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2024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