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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Oct 30. 2021

난 함부로 침범하지 않아-렛미인

외톨이들의 연대


2008. 스웨덴. 감독-토마스 알프레드슨. 출연-리나 네안데르손, 카린 베그 퀴스트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렛미인(Let Me In)

잔혹동화, 탐미적 상징시 같은 영화 지금까지 내가 본 어느 흡혈귀 영화보다 아름답고 서정적이었다.



모두가 외롭다


'흡혈'은 단지 이 영화의 소재일 뿐이다. 흡혈귀의 소재를 빌 외톨이들의 연대,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큘라, 아이들의 세계도 '힘 있는 자가 지배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별 다르지 않다. 힘이 있어야 외롭지도 않다.


이 영화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극단적 불행이나 인생의 고통은 없지만 왕따 소년 오스칼과 고아 흡혈 소녀 이엘리를 비롯해서  오스칼의 엄마(선진국 스웨덴에서도 싱글맘은 힘들구나), 이엘리의 늙은 정부,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조금씩 외롭다. 외롭지만 '나만 외롭다'라는 응석이나 과장 없이,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게 사는 동안의 몫으체념사람들처럼 보인다.


외로운 오스칼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엘리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리지만 오스칼도 훗날 이엘리의 그 늙은 정부와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흡혈귀인 이엘리는 죽지도 늙지도 않는 영원불멸의 12살이지만 사람인 오스칼은 세월을 이길 수 없다. 오스칼은 제 사랑을 지키고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피를 계속 공수하러 다니면서 외부와 차단된 폐쇄적이고 쓸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스칼 미래는 늙은 자신과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어린 연인으로부터 버 일이리라. ​더 이상 사람들의 피를 구할 힘도 없어지고 이엘리의 새로운 어린 사랑이 또 나타나면 그 또한 이전의 늙은 보호자이자 정부처럼 덧없는 죽음을 맞이하겠지.

"오늘 밤은 그 아이를 만나러 가지 말아 줘"란 구차한 유언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자기 사랑의 결말을 다 알면서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것, 그 사랑의 끝에서 혼자만 '죽지도 못하고' 끝끝내 살아남아야 하는 게 이엘리의 형벌이다. 사람을 죽이는 게 원죄가 아니라, 죽지도 못하는 영원불원죄이고 형벌인 것이다.

미래와 결과를 미리 다 알면서도 반복해야 되는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고통도 반복되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모두 죽는다'라는 공평한 미래와 죽는다는 '희망'이 있는 인간이 차라리 덜 절망적이다.



왕따와 고아의 연대


이 영화에선 복수와 처벌의 대상자도 아이들이고 심판자도 아이들이다.

오스칼은 자기를 왕따 시키고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가하는 학교 친구들한테 아무 대응도 못한다.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칼로 집 앞 나무를 찌르는 등의 소심한 복수를 하지만 그저 생각뿐이다.


아이들이 외로움과 학대의 고립에서 사랑과 우정의 '연대'를 만들어 갈 때 어른들은 자신들의 고단함에만 젖어 있다. 낳아 준 부모도, 학교의 선생도 왕따와 외로움에 지친 오스칼의 고통에 관심 주거나 해결하고 위로해주지 않는다.

이혼모로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 고단한 어머니는 오스칼의 고통을 봐줄 여유가 없고, 매너리즘에 빠진 학교 선생들도 무관심하고 나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보호자'가 돼주는 어른은 없다. 영화 속에 이런저런 어른들이 나오지만 한결같이 무능하고 피곤하고 외롭고 지쳐있다.

흡혈귀 이엘리도 돌보아주는 어른이 없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피의 양식을 스스로 구하러 다녀야 된다. 문득, 우리 일용의 양식들은 결국 '남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끔찍한 발견을 한다.


사랑을 고백한 후 이엘리의 정체를 알게 된 오스칼이 살인에 대한 침묵의 비난을 하며 자신을 멀리하자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너도) 죽이고 싶어 하잖아. 마음속으론 몇 번이고 죽이지. 하지만 난 살기 위해 죽여야 해"

너희 폭력은 강자의 약자에 대한 군림, 복수심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내 살인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라항변 같다. 



"나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아"


이엘리의 정체를 안 후 오스칼은 이전과 달리  멀리하고, 집에 찾아도 반기지 않는다. 문을 열어 주고도 들어오라고 하지 않는 오스칼을 보며 이엘리는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말한다.

 렛미인(Let Me In) 네 안에 들어가게 해 줘!

"날 초대해줘. 난 초대해야 들어갈 수 있어" (들어가도 되니? 들어가게 해 줘)



자신은 인간이 초대해야 인간들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let me in"이라는 대사는 상대방의 의중과 마음과 무관하게 함부로 아는 체하고 섣불리 침범하는 인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들)은 초대받지 않으면 인간들 너네처럼 (남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네가 먼저 잠가진 내 맘을 두드리고 들어와 놓고선 이제, 너마저 내 생존을 비난하니 나는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다고 절규하는 듯 온몸에서 피를 아낸다.


이엘리가 떠난 어느 날 오스칼은 왕따와 폭력의 극한을 맞게 되고, 홀연히 나타난 이엘리가 피와 살점이 튀는 복수를 해 준다. 둘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우정과 사랑을 확인하며 합치되지 않는 이 세상과 결별을 고하고 연대의 길로 같이 떠난다.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알아보고 마음 준 이를 만나면 그의 실체나 서로의 끝을 알고도 같이 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따뜻하면서 유니크했다.

이엘리는 그로테스크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흡혈귀다. 지나치게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은 이엘리의 외모는 이 역할에 대한 관객의 이해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더 효과적이었다. 눈부 금발과 붉은 입술의 오스칼, 검은 머리와 짙은 다크서클의 큰 눈망울을 가진 이엘리의 외양적 대조는 서로의 '안'과 '밖'인 듯한 대조적 두 캐릭터의 존재와 이미지 잘 맞았다.



기존의 흡혈귀 영화가 검붉고 어두운 배경의 영상이었다면 이 영화는 외양적으론 좀 더 환하고 푸르고 밝고 시리다. 그 시린 느낌은 이엘리가 빨아먹는 사람들의 피조차 뜨겁다기보다는 다 식은 차가운 피로 느껴진다.

담담한 표현과 대사, 서정적이고 느린 템의 화면들이 고독한 정서에 조용히 집중하게 한다. 배경 음악도 극적 긴장을 유발하거나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임팩트는 없고 영화 뒤에 한 걸음 물러서 잔잔하다.

붉고 다크 한 여타 흡혈귀 영화와 대조되는 밝고 푸르고 시린 이 영화의 영상은 남의 피로 연명하는 흡혈귀보다 인간 세상,  일상의 폭력과 소외감 더 차갑고 무섭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감독의 캐릭터 운용이해석 외에도 색감에 대한 이용과 이미지도 인상적이었다. 색과 빛, 그림자를 상당히 중요시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많았는데 사진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느낌 준다.

차가우면서도 밝고 환한 영상은 햇빛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창을 사이에 두고 느끼는 정도의 거리감도 있어 관객이 전적으로 이입하는 걸 적당히 차단하며 지켜보게 한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모노톤 컬러에서 중간중간 삽입된 푸르고 붉은 원색의 색감과 질감들 영화 전체가 흑적의 피와 어둠으로 가득한 영화보다 임팩트 강했다.


영화 속에서 내내 등장하는  시린 하얀 눈은 '화이트 아웃'을 연상케도 해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오스칼의 상상, 혹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엘리는 오스칼의 구원이나 해방, 혹은 해소되지 않은 자기 욕망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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