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과 시간
현대인에게 반복은 인기가 없다. ‘자기’가 온갖 미디어와 SNS에 가시적으로 떠다니는 에고로 확장된 지금은 미래적 꿈보다 당장의 유명세가 중요하다.(67~68)
배우는 건 그만하고 싶어. 수영을 배우는 데, 자유형이 안 됐어. 근데 여럿이 하는 거니까 배영으로 넘어가고, 평영으로 넘어가고, 학교 수업이랑 같아. 난 구구단을 떼지 못했는데, 분수로 넘어가고. 그 뒤로 난 그냥 앉아 있는 거야. 동호회에서도 똑같은 짓 반복하기 그렇잖아.
남이 아는 건 나도 알아야 하고 시대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집착, 나는 이걸 변방 콤플렉스라 부르겠다. (최영미)
삶이 꽁꽁 얼어붙은 시냇물처럼, 보톡스를 잔뜩 맞은 얼굴처럼 굳어지면, 새로운 파트너, 새로운 직업,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싶어진다. 하지만 커다란 변화에 대한 환상은 주로 자기 삶의 조건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 수단이 오히려 현 상태를 강화한다. 불평할수록 그 상태에서 잘 버틴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서 불평하는 것이다.(70)
반복은 부족함이 아니라 뚝심의 표시다. 동일한 주제로 끝없이 돌아가야만, 같은 자리를 계속 파고 들어가야만 위대한 발전이 나올 수 있다. 끈기는 의지의 교리이다. (85)
평범함의 과제는 폭풍 같지 않은 폭풍의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시해 보이는 폭풍이 계속 이어지면 가장 강인한 마음도 무너뜨릴 수 있다. 모험의 부재를 공유하면서 즐거워하는 작가와 독자라는 운명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운명이 비참할수록 픽션은 건실해진다. (73)
지속적인 읽기와 반복적인 쓰기로 관성적 삶의 중지와 전환을 꿈꾸는 명백히 온전치 못한 주체들의 공동체. “결여는 픽션을 부른다.”
프루스트는 도둑질보다 고약한 것이 자기 표절이라고 했다. 이는 새로 만든다고 착각하면서 자기를 모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흉내내는 과정에서 혁신이 이루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자기의 창조와 재창조는 언제나 모방한 형식과 새로운 형식 사이의 투쟁에서 나온다.(109)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란 게 뭔지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싶었습니다-<옥희의 영화>
반복은 불모성과 생산성이라는 양가의 힘을 지녔다. 고정시키는 동시에 변화시킨다. 우리는 전에 들었던 얘기를 또 듣기 싫어하지만 인생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운동이나 예술 활동의 반복 훈련, 복습, 연극의 재연,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국가의 재건, 잊고 있던 고전의 재독, 재혼, 친구와의 재회, 과거에 했던 일의 반복이다. 나선 계단을 따라갈 때처럼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지만 결코 같은 자리를 두 번 지나는 것은 아니다. (73)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난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나의 해방 일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휴식 중인 것은 아니다. (71)
-엄청나게 움직이면서 아무데도 가지 않으려면 제자리에서 뱅뱅 돌면 된다. (86)
어떤 행동을 다시 준비하려면 일단 기존에 짜인 행동의 올을 다 풀어야 한다.(109)
점진적 쇠약은 점진적 해방과 함께 가기도 한다.(121)
반복은 군더더기를 바탕으로 변화를 만든다.
우리는 끝까지 다듬어지는 상태에 있을 것이요, 불완전한 채로 떠날 것이다.
모든 실패는 새로운 시도의 도약대다.(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