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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칠 Mar 02. 2023

계획과는 달라진 삶

일본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5)


 일본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져 간다.

 새로운 일상은 내 인생에 특별한 경험을 심어주고 기존의 내 모습과는 다른 점을 길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는 미세하게나마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 어제 그린 미래의 내 모습과 오늘 그린 미래의 내 모습도 달라지게 되는 걸까?




 몇 년 전, 내가 그린 미래를 위해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 일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열심히 배웠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올해 기다리던 결실을 맺었다. 열심히 배운 만큼 성장했고 얻어낸 결실이 생각보다 더욱 달았기에 자신 있었다. 올해 취직을 목표로 두었던 센터로부터 연락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일본에서의 어느 날, 내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결과에 대해 오만하게 굴은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 분야와 관련해 배우고 싶은 게 많으며 그것들을 전부 품어내고 싶기에 열심히 배움을 욕심내고 있다. 이뤄낸 결실이 달콤했던 나는 그냥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당연히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다.

 사실 공부를 시작하며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금 우려했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내게 익숙한 A라는 길과 내게 필요한 B라는 길이었다. A는 이미 내가 곧 잘하는 것이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이를 더욱 보강한다면 나의 이력에 온전히 도움이 될 길이었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B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B가 이 일을 하는데 필수요건은 아닐지라도, 내가 만들어갈 나의 길에는 꼭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일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내 확신에 힘이 실렸다. 그래서 사회가 B보다 A를 더 좋게 알아준대도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내 길이 통상적인 길은 아닐지라도 결국 종착지는 같을 테니 말이다.

 이런 나의 포부가 무색해질 만큼 나는 이번 결과에 크게 실망했다. 내가 이번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는 규정상 A만 되고, B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실망했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희망을 품은 채 의심만 하던 것과 직접 결과로 맞닥트리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밟아온 시간들이 순간 흔들렸다. 그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온 건 아닐까, 아까운 시간을 버려온 건 아닐까, 내가 쏟은 모든 노력이 쓸모없어지는 건 아닐까, 정말 나의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11시가 조금 넘은 늦은 밤에 친구와의 통화를 핑계로 집 밖에 나갔다. 뒷 문을 비추는 가로등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골목을 서성거렸다. 혼자가 되니 울기 편했다. 핸드폰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기를 쓰며 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십 분간 감정을 쏟아내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일기를 적었던 메모장을 닫으니 고모에게 메시지 하나가 와 있더라. 힘들 거 알지만 밤이 늦었으니 너무 늦게까지 울지 말라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고 쓰여있었다. 여행 중에 땅 밑으로 꺼지는 감정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가족들 앞에서 더욱 의연한 척했지만 이들은 이미 나의 마음을 알 고 있었다. 내 딴엔 잘 속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소식을 들은 J와 H에게도 나를 응원하는 문자가 와있었다. 나를 따라 집 밖에 나온 마음들이 그제야 나에게 닿았다. 따듯했고 고마웠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가는 길이 다 다른데 어떻게 정답이 있을까. 목적지가 같아도 가는 길이 다르면 인생의 여정이 달라진다. 이런 여정을 겪는 사람도 있고 저런 여정을 겪는 사람도 있다. 여정에 맞고 틀린 건 없다. 그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여정에서 자신만의 고유 색을 만들게 되고 그로써 모두는 서로 다른 빛으로 반짝이게 된다. 그렇게 나만의 강점과 장점이 생겨나는 것이라 믿어본다.

생각해 보았다. 내가 걷는 길이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니더래도 괜찮지 않을까. 왜냐하면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독창적인 길을 가고 싶어 했다. 어찌 보면 가고 싶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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