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7)
밖에서 저녁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다.
우리 집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채널은 1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본에 오기 전 가끔씩 유튜브로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을 봤었다. 그것과 비슷한 방송을 하는 채널이 2개 정도 있다. 전부 알아들을 순 없지만 눈치껏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 일본어 좀 되나 보다.
저녁에 고모가 아직 깔지 않은 이불에 기대 누워 핸드폰으로 <일타 스캔들>을 보았다. 처음엔 드라마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관심이 생겨버렸다.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나도 연애가 하고 싶어 졌다. 에라이.
어쩌다 보니 고모 없이 혼자 신주쿠역에서 집에 돌아가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때가 아슬하게 지난 저녁시간이었다. 요즘 나온 일본 만화영화 주제곡을 들으며 전철을 기다리는데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잘생긴 한 남자가 오더니 내 뒤로 줄을 섰다. 때마침 바람을 가르며 전철이 들어왔다. 남자를 바라보는 내 얼굴로 바람이 훅 끼쳤다. 내 머리가 산발이 되었지만 그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전철엔 사람이 꽤 많았다. 나와 그 남자는 같은 곳에 나란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에 땀이 나는 듯했지만 내 착각이었다.
나에겐 고질병이 하나 있다. 주관적으로 잘생긴 사람 앞에 서면 최선을 다해 그 사람에게 관심 없는 척을 한다. 내 몸의 모든 세포를 활성시켜 그 사람을 인식하지만 제대로 한 번 쳐다보지도 못한다. 우리 집 하프들은 다 그렇다.
내가 스무 살이었다면, 이 남자와 나란히 서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벌어질 수 있을 다양한 이야기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근데 하필 나는 딱 서른이다. 이제 나는 앞뒤 없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 사실 뻥이다. 성격검사를 해보니 나 보고 무슨 대단한 공상가라고 한다. 신통하다.
전체적인 장면을 돌이켜보면 사람이 많은 전철 안에 그냥 나와 그 남자가 함께 서 있는 게 전부이다. 동생이 알려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보이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보라고. 딱 말을 걸려는데 그 남자가 내렸다. 다행이다.
<뜻풀이>
하프 : 우리 집 어른들이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우리들을 부와 모 반반씩 닮은 하프들이라고 이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