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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형 Apr 30. 2016

관찰과 평가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의 위험성

"또 지각이냐? 그렇게 게을러서 나중에 뭐가 될래?"

"넌 만날 그 모양이야? 좀 나아진 모습이 전혀 없고."

"내가 너 때문에 창피해서 못살아, 정말."

"넌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이기적이라고."


위의 말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상대방은 맥락이 명확한 상태, 즉 이렇게 말하게 된 배경이 '지금 현재' 있으면 이해의 측면에선 좀 낫다. 예를 들어, 자꾸 지금 없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을 하면 험담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그렇게 뒷담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갈등을 각오해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머리에만 있고 듣는 사람은 당황스러운 비난도 많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전혀 모를 때 말이다. 흔히 말하는 '밑도 끝도 없이' 판단자의 온전한 개인 생각일 경우이다. 게다가 이런 판단은 화가 난 상태에서 비난의 어조로 하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판단이 착오임이 밝혀진다면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잘못된 판단이란 해결이 나온 후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편견은 그 한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고 그 사람에 대해 온전히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비폭력대화를 창시한 마셜 로젠버그는 관찰과 평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내리는 평가가 폭력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소통을 막으며 상대에 대한 편견으로 부정적 사고가 마음 속 평화를 해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빗 존슨은 행동과 상황을 묶어서 말해야 자기 인식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첫번째 예인 늦은 것과 게으름을 묶으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안겨줄 뿐 자기가 늦은 이유를 성찰하고 다음 행동을 수정하려는 동기를 부여하기 힘들다. 그나마 이건 상황적 맥락이 있어서 다행인데, 두번째인 '그 모양'이란 말로 비난하면 도대체 그 모양이 뭐고 그게 어떤 점에서 좋지 않다고 판단한 건지 듣는 사람이 전혀 알 수 없다. 근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평소 이렇게 두리뭉실한 언어로 사람들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인식이 부족하다. 자기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모른다. 성찰능력이 거의 없는 셈이다.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대부분 자신의 욕구와 관련이 있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걸 원하고 명확함을 바라는 사람은 지각에 대해 불성실과 게으름으로 판단한다. 존중에 대한 욕구가 강한데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중을 받지 못할 때 상대방이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비난한다. 자신이 존중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 그걸 어떤 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있다면 소통은 훨씬 더 쉬워질텐데 말이다.


비폭력대화에서는 욕구가 핵심이다. 그게 충족이 되면 긍정적 감정이 생기고 좌절될 때 부정적 감정이 생긴다. 우리는 감정의 이 두 가지 양상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자신의 가치체계 안으로 밀어넣어 규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걸 강요한다. 넌 이렇게 했으니 이런 사람이란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갈등이 생기고 그걸 어떻게 다룰지 몰라 당황한 채로 소통은 끊어지고 만다.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한 채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자기 인지가 필요하다. 그걸 알아차리려면 감정을 느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슬픈 건지, 답답한 건지, 당황스런 건지, 반가운 건지, 만족스런 건지 등등. 그리고 그런 감정이 생긴 이유인 욕구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욕구가 충족이 된 것이면 축하를, 좌절되었다면 애도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건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오는 연민이 필요하다. 연민이 없고 판단이 앞서며 그걸 비난의 도구로 사용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나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중요한 건 뭐지?' 이렇게 물어본다. 그러면 연민이 마음이 생기고 나와 상대를 연결할 수 있다.


상대방을 판단하고자 할 때, 이미 판단했을 때 각자에게 중요한 게 무엇이고 어떤 감정일지 생각하자. 그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거짓된 분리를 선택한 삶에 대해 연민을 느끼자. 그런 다음 평가의 언어를 걷어치우고 관찰한 바를 중심으로 행동과 상황을 묶어서 말하자. 그러면 상대방도 공격이나 방어의 태세를 낮추고 연결하려고 할 것이고 그러면 진정한 소통이 시작될 것이고 갈등은 풀리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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