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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옥 Dec 30. 2020

시룻번

“왜 이렇게 떡이 안 익는 다냐?”

  




두툼한 나무부엌 문으로 오후의 태양빛이 부엌 바닥을 비추었다. 가마솥 걸린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타올랐다. 부뚜막 옆에 물을 길어다 저장해 놓은 항아리처럼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은 사람 형상의 시루가 가마솥에 얹혀 있었다. 나무청에 쌍여있는 땔나무를 끌어다 아궁이가 터지도록 땐 불이 넘실거려 서인지 어머니의 얼굴이 불그스름하였다. 불 그림자가 어머니 옆에 앉은 아이의 얼굴에 너울너울 오르내렸다.      


  짙은 가을이다. 한옥으로 된 갤러리 뒤뜰 장독대에 놓인 옹기시루와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가워 시루를 안아본다. 바닥에 구멍 몇 개 뚫린 시루에서 바람 든 뼈에 구멍 뚫린 어머니의 모습이 드리운다. 농사일에 몸을 혹사시켜 바스락거리는 허리를 예닐곱 번 시술 해야만 했던 애처로운 엄마인 듯 반가웠다. 어느 아녀자가 떡을 쪘던 옹기시루일까. 아직도 시룻번을 붙였던 자욱이 남아 있고, 비바람 맞아 풍화 되어가는 시루 안쪽에는 초록빛 이끼에 시간의 흐름이 선연하였다. 시루 옆 항아리에는 사람 손이 닿지 않아 비단 옷감처럼 잘 짜진 거미줄에 바스락 거리는 낙엽 몇 개 걸려있다.     


  제사떡을 찌는 날이면 항아리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장독대에 다소곳이 뒤집어져 있던 시루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 아버지가 자전거로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가 읍내에서 쌀을 빻아왔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 이었다. 어머니는 시루 바닥의 동그란 구멍에 무를 얄팍하게 썰어 막고 드디어 떡을 안칠 시간이 되었다. 늘 엄마 곁을 맴돌던 나는 흰 쌀가루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쌀가루 한 대접 팥고물 한 대접을 한 켜 한 켜 시루에 담았다. 엄마 손은 시루 안에서 춤을 춘다. 자루 안에서 엄마 손과 내손이 마주칠 때마다 엄마의 따뜻한 체온은 어찌 그리도 좋던지.    

  

  떡을 찌다가 소변을 보면 시루에서 오줌 누는 소리가 나면서 시룻번으로 김이 새어 나오고, 가랑이를 벌리고 불을 때면 시룻번이 터지고 불어서 헛김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시루떡 찔 때 부정 타면 떡이 안 익는다는 옛말을 상기 했는지 목욕재계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부엌 한 쪽에 쌓아 놓았던 나무를 아끼지 않고 불을 때자 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솥 위에 떡을 안친 시루가 올려졌다. 어머니가 떡을 안칠 때 조금 남겨 둔 쌀가루로 반죽을 해놓았다. 방학 때 과제 중에 만들기가 있으면 산비탈에 가서 진흙을 채취 해다가 그 찰흙으로 탱크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었다. 마치 그 찰흙처럼 쌀가루 반죽을 주물럭거리며 놀았다. 어머니는 아궁이의 불을 재 무덤 속에 묻어 살살 잠재웠다. 불꽃이 사그라지자 어떤 예식을 치루 듯 뜨뜻해진 부뚜막에 발을 올리고 시룻번을 붙이기 시작했다. 내가 동그랗게 만들어 주는 쌀가루 반죽은 어머니의 손에서 길쭉하게 늘려져 솥과 시루가 맞닿는 부분에서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된다. 시룻번은 시멘트의 부착력을 능가하지 못하는 기껏 쌀가루 반죽이다. 하지만 펄펄 끓는 물을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며 제 몸을 굳힌다. 김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솥 가득 열기를 품어 떡을 익게 하는 것이다. 그 시룻번 속에서 내가 이토록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느낀다.    

 

 “내가 열 살 무렵 이었는갑다. 동생을 업고 젖을 먹이기 위해 남의 밭으로 품팔이 간 오매한테 갔었지. 깔끄막을 올라 대밭 옆 좁은 길을 지나고 나면 우물이 있었으야. 그 옆에 아주머니들이 많이 앉아 있었는디 애기가 애기를 업고 간다고 할까봐 겁나게 부끄럽더라이”     


  구순이 다 되어가던 어머니는 그 오랜 된 기억을 마치 지금 일어난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지만 눈가는 젖어 들고 있었다. 기저귀도 시원찮았던 시절, 젖을 다 먹인 동생을 다시 들쳐 업고 변변치 않은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오줌으로 등이 다 젖어 있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힘에 부친 그 시간들을 어찌 견뎌냈을까. 맏이로서 동생들을 등으로 키워내고 육이오 전쟁 통에 큰 아이 낳고, 어머니가 세 살 된 동생을 동그마니 남겨두고 세상 떠나다 보니 나 어린 친정 동생까지 키운 어머니였다. 여리디 여린 나무가 비바람 견뎌내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듯 당당히 일궈낸 어머니의 삶이 제 몸을 희생하며 떡을 익혀주는 시룻번과 어찌 닮지 않았는가?     


  솥에서 팔팔 끓는 물이 켜켜 담은 떡가루와 팥고물을 통과해 수증기가 위로 솔솔 잘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도통 떡이 익지 않았다.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로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떡을 찔러 봤지만 흰 생쌀가루가 계속 묻어 나왔다.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왜 이렇게 떡이 안 익는 다냐?”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부지깽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부엌을 나섰다. 잰걸음으로 마당 옆 우물을 지나 농기구가 있는 창고에서 삽을 가져왔다. 떡 찌다가 웬 삽일까? 의아해 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아궁이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숯불을 입구로 끌어당겼다. 불땀이 좋아 풍성해진 숯불을 떠서 솥뚜껑 위에 스스럼없이 붓기 시작했다. 불의 열기로 수건을 쓴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얼굴에는 홍조를 띠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떡을 익혀야 한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솥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만으로 떡이 익지 않으니 솥뚜껑 위에 열을 가해 떡을 익혀 보려했던 것이다.     


   4월 어느 날이었다. 병풍처럼 산으로 에워싼 작은 마을, 어느 마당에서는 혼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감나무에 초록의 잎이 나오기 시작하고 처마 밑에 제비들이 새끼를 낳기 위해 집을 짓느라 바빠지고 있을 즈음 어머니의 집 마당에 채알이 쳐졌다. 동네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암반에 물 떠놓고 상을 차린 후 소박하게 혼례식을 치룬 것이다. 어머니는 남색 치마에 노랑 저고리, 원삼 족두리 쓰고서 가마에 태워져 종갓집으로 시집을 갔다. 그 후 줄곧 제사를 지냈는데 익지 않은 떡을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떡이 익지 않으니 토방 마루 밑에 가지런히 벗어 두었던 어머니의 흰 고무신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떡이 익지 않으니 다급해졌던 것이다. 읍내 갈 때나 신는 흰 코고무신에 흙을 털어내더니 머리위에 올린 채 조심스럽게 앉아 불을 때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야 되는 시절이었다. 우물에서 옴박지에 박 바가지로 물을 퍼 담아 머리 이고 출렁거리지 않도록 고개를 쳐들고 천천히 걷던 모습 그대로였다. 왜 신발을 머리에 얹고 떡을 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떡이 익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숨겨져 있었음을 안다. 머리에 신발을 이고 떡을 찌던 모습을 지켜봤던 나는 어머니의 다급했던 어느 한 순간의 젊은 어머니가 보인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겨울이었다.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 산촌에 겨울밤은 칠흑 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볼일로 출타해서 집에 안계셨다. 잠을 자던 어린 남동생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모르더니 나에게 잠깐 동생 옆에 있으라고 한 뒤 어둠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후레시도 없던 시절 집에서 떨어진 외딴집까지 시커먼 어둠속을 뚫고 한 달음에 달려가서 약을 구해 왔다. 어머니라고 어찌 어둠이 무섭고 두렵지 않았을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급박했던 어머니의 한 순간이 내게 사진처럼 찍혀있다.     


  시루가 놓인 뒤뜰에 차르르 낙엽이 구르는 소리 들리고, 어느새 시루 안에 나뭇잎 한 잎 두 잎 떨어져 눕는다. 자식들 추우면 고생한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봄에 가고 싶어 하시더니 봄이 오기도 전 가을에 서둘러 가신 어머니, 시룻번 붙여가며 머리에 흰 고무신 이고 떡 찌던 어머니의 기억을 붙잡아 두고 싶다. 떡을 익히기 위해 애쓰던 어머니를 바라보던 그 부엌이 아련하다. 이제 어머니가 된 딸은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 한 방울 훔쳐 낸다. 어머니의 환영 같은 시루에서 어머니의 젖은 눈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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