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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23. 2024

그.리.고.

토지 5부 5권, 통권 20권 

드디어 20권이다.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드러나던 길고 길었던 독백의 날들, 토지 속 인물들이 겪는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어 손을 놓을까 싶었던 순간들을 지나서 그렇게 20권이다. 허물어진 이상현이 등장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 드디어 자유롭다 했었던 이상현이다.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이상과 현실은 끝내 유토피아에 닿을 수 없었고, 스스로를 유배시키듯 거칠게 살아온 인상을 풍긴다. 길에서 맞고 업혀온 이상현을 보며 다시 태어난 듯했던 임명희를 떠올렸다. 피어날 수 있으리란 순간의 인식은 현실 앞에 무참하다. 임명희는 통영에서 그렇게 겨우 숨만 쉬듯 살았다. 실존하는 삶에 영웅서사는 허상이다. 개인적 자각을 전후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전환이나 절대적 구원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인생, 우연의 조합만이 생을 찬찬히 지켜본다. 토지는 생생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살아있는 나, 지금, 여기.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13p.   


나는 토지의 어떤 마지막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미리 읽은 인물 소개로 토지가 해방을 맞는구나 그렇게 끝이라는 건 알고 있다. 거기까지 우리의 인물들은 어떤 시간을 걸어갈까. 먼저 김길상. 길상이가 무사히 감옥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이미 손주까지 본 어른인데도 어려서부터 지켜봐 온 때문일까 아직도 스스럼없이 길상아 하고 부른다. 그렇게 모질게 고생을 했으니 좋은 날도 있기를 바래본다. 서희와 반갑게 만나 도솔암으로 쉬엄쉬엄 돌아가 본인이 인생을 걸고 그려낸 관음탱화 앞에 서기를 바란다. 서희와 가장 바탕에 깔린 마음을 이야기하고 두 사람의 인생이 편안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서희도 너무 오랜 시간 버텨왔다. 두 사람에게 자유의 날들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만주로 떠난 영광은 해방과 함께 돌아와 양현과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만난다. 풍파를 지나온 두 마음은 간절하게 서로의 곁을 지키고 산다. 드라마틱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아도 매일 서로를 배웅하고 마중하며 함께하는 삶. 오래 마음을 앓아온 사람들이 다정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평온한 일상. 길상과 서희가 그러하기를 바라듯 영광과 양현도 그럴 수는 없을까?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리 녹록하지 않고, 참혹하기도 함을 안다. 그래도 버텨온 날들, 빛나는 순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석이는 학병으로 끌려나간 아들 성환이와 함께 평사리로 돌아와 눈먼 어머니를 얼싸안고 운다. 성환할매 인생에 평생 기다려온 아들과 만나는 순간은 있어야 한다. 다른 보상은 기대할 수 없다. 


예민하고 영민한 상의는 아버지를 만나 안정을 얻고 새 시대를 살아갈 용기를 내어주기를, 영팔아재는 그래도 내 살아 이날을 본다 하고 감격하기를 그리고 맘 편히 돌아가기를, 장서방도 짐을 벗고 생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본인이 하고 싶던 일을 하며 사는 소소한 날들을, 한복이가 어깨 펴고 아들 영호와 더불어 웃는 상상도 해본다.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듯 그렇게 떠올리다 보니 어쩐지 슬프다. 우리는 왜 처음부터 그렇게 살 수 없었을까. 왜 죄 없는 사람들이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을까. 왜 드라마의 마지막에 모두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행복한 장면을 콜라주 하는지 알 것 같다. 현실은 내 세상 속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두 그렇게 행복한 날이 없다. 그건 그냥 간절함이다. 끝나는 이야기를 두고 맘 편히 돌아설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서사는 이미 살아서 한 세계를 이루고도 남았다. 저들의 불행을 견딜 자신이 없다. 내가 완전하지 않음을, 그럴 수 없음을 알고도 기다리는 건 이미 마음 준 저들의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그 원래 형태에서 번져 나오는 것, 번져 나옴으로써 세월의 부피 따라 변화하는 한 시점, 시점마다의 실체는 당자들 영혼의 이력을 알려주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빛깔, 움직임, 소용돌이, 침잠, 느낌이 가능한 모든 정신영역의 추상적 형태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로르 지혜로운 사람은 통어하고 사악한 사람은 엄폐한다. 반대로 그것을 심안으로 간파하여 화를 면하거나 인생의 좋은 도반(伴)을 얻을 경우가 있고, 간파하지 못하고서 화를 입거나 우둔한 생을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삶의 흔적은 마음으로 행위로 행한 만큼 더도 덜도 아니게 그 모습에 행동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143p.


그.리.고. 

친일파들이 매 맞아 죽고, 총 맞아 죽고, 재판에 서서 정당한 죄를 받고 감옥에 수감되는 그런 상상. 미관말직을 믿고 거들먹거리던 개동이 같은 놈들은 응징을 당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죗값을 치른 인간이 몇이나 되나. 반민특위가 제대로 돌아가는, 이름 그대로의 정의. 이걸 상상으로 부르는 우리의 지금이 너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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