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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17. 2024

존재는 동사로 증명된다.

토지 5부 4권, 통권 19권

못을 꾸부려놓은 듯, 활자만 같은 말이 심장 복판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마치 구름을 타고 노닐다가 험준한 산봉우리에 부딪친 그런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둘이, 그 얼마나 멀고 먼 말인가. 97p. 


수인선을 타고 훌쩍 바다를 향해 떠나는 영광과 양현의 이야기는 사뭇 현대적 연애소설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영원히 도착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은 바다일 수 없고 내려선 염전 밭일수도 없다. 둘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만 존재한다. 같은 방향을 향해 서서도 시선은 나뉘어져 있고 시선의 끝은 다른 갈래로 향한다. 끝내 닿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영광은 양현을 안을 수 없고 양현은 이 길로 끝일 것만 같다. 아무리 운명이어도 둘에게 허락된 생활은 없다. 영광은 만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시대가 아니었다면, 시절이 조금만 덜 불우했다면 둘에게도 다음이 있었을까?


한이 된다는 말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는 캄캄절벽, 어디서 빛줄이 새어들어 한을 풀 새날을 기다려본단 말인가. ······ 만석꾼 살림의 최서희나 나룻배 배삯을 선뜻 내놓을 수 없는 박서방이나 눈이 멀어버린 성환할매, 살아보고 싶은 뜻을 잃은 상태는 매일반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평등했다. ······ 하물며 서천으로 넘어가는 해를 그 누가 잡을 것이며 망망대해로 흐르는 물을 누가 막을 것인가.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 전쟁이요, 작은 섬나라 대일본제국의 야망이야말로 칼로써 귀신을 잡으려 하니, 재앙은 인간 스스로 만들고서 그 스스로도 덫에 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238p.


모두에게 공평하게 불행뿐이다.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간신히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지난다. 산으로 피해 간 사람들, 겨우 살아 돌아온 남희, 어머니의 쓸쓸한 등을 생각하며 우는 환국, 배설자의 죽음 앞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강선혜, 부당한 대우 앞에 순응해야 하는 상의까지 모두는 모두의 자리에서 고통스럽다. 생은 이다지도 남루해 기대어 설 곳을 잃은 사람들을 두고 사랑은 사치일 뿐. 영광의 떠남은 어쩌면 저 시절의 필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백 생멸(生滅)이 있다는 한 찰나, 찰나의 연속이 아니던가? 하면은 내가 억겁을 살았단 말일까? 그것이 시공을 뚫고 가는 섬광이었다면 나는 한 찰나를 산 셈이 된다. 그러나 한 생명이 땅과 하늘 사이에 있는 이상 기억은 생명과 더불어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한이로구나. 죄업이든 슬픈 이별이든 또는 만남이든 횡액이든, 기억의 사람들이 뿌리를 내렸던 곳이며 내 또한 뿌리를 내렸던 곳, 아아 기억, 수많은 기억들은 억겁의 길만큼이나 길고도 많구나. 서희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것처럼의 기억의 바다에서 자맥질하다가 간신히 현실로 돌아온다. 259p.


밑줄 친 문장에 한 번 더 줄을 치듯 눈 속에 꾹꾹 눌러 담듯 손으로 한 번 더 꾹꾹 눌러쓴다. 읽는 문장을 손으로 옮겨 써보면 배로 아프다.  저 마음을 지금의 나에게 투영해 본다. 기대할 내일을 잃은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에 기대어 지금을 버텨야 하는가. 생이 가장 잔인한 순간이다. 눈 뜨고 숨만 쉴 수 있다고 해도 지금을 살아야 할까? 바닥도 없이 휩쓸려 내팽개쳐진 현실이라 해도 허무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내일을 그래도 기다려야 할까? 그 ‘내일’에 닿으면 그때 ‘우리’는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내일’이 과연 있기는 한가. 마디마디가 서럽다. 고단하다 말하기도 죄스러운 저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이 숨 놓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다.


상의를 둘러싼 동사를 새삼 바라본다. 상의와 친구들은 그래도 사이사이 웃는다. 분노한다. 생각한다. 결심한다. 움직인다. 감정적 고리를 다 밀어 두고 오직 동사만 생각해 본다. 캄캄한 날들, 존재는 동사로 증명된다. 살아있다는 것만이 사실이다. 두루 공평한 불행을 견뎌 우리는 끝내 살아남아 우리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잔혹한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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