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부 4권, 통권 19권
못을 꾸부려놓은 듯, 활자만 같은 말이 심장 복판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마치 구름을 타고 노닐다가 험준한 산봉우리에 부딪친 그런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둘이, 그 얼마나 멀고 먼 말인가. 97p.
수인선을 타고 훌쩍 바다를 향해 떠나는 영광과 양현의 이야기는 사뭇 현대적 연애소설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영원히 도착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은 바다일 수 없고 내려선 염전 밭일수도 없다. 둘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만 존재한다. 같은 방향을 향해 서서도 시선은 나뉘어져 있고 시선의 끝은 다른 갈래로 향한다. 끝내 닿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영광은 양현을 안을 수 없고 양현은 이 길로 끝일 것만 같다. 아무리 운명이어도 둘에게 허락된 생활은 없다. 영광은 만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 시대가 아니었다면, 시절이 조금만 덜 불우했다면 둘에게도 다음이 있었을까?
한이 된다는 말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희망이 없는 캄캄절벽, 어디서 빛줄이 새어들어 한을 풀 새날을 기다려본단 말인가. ······ 만석꾼 살림의 최서희나 나룻배 배삯을 선뜻 내놓을 수 없는 박서방이나 눈이 멀어버린 성환할매, 살아보고 싶은 뜻을 잃은 상태는 매일반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평등했다. ······ 하물며 서천으로 넘어가는 해를 그 누가 잡을 것이며 망망대해로 흐르는 물을 누가 막을 것인가.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 전쟁이요, 작은 섬나라 대일본제국의 야망이야말로 칼로써 귀신을 잡으려 하니, 재앙은 인간 스스로 만들고서 그 스스로도 덫에 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238p.
모두에게 공평하게 불행뿐이다.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간신히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지난다. 산으로 피해 간 사람들, 겨우 살아 돌아온 남희, 어머니의 쓸쓸한 등을 생각하며 우는 환국, 배설자의 죽음 앞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강선혜, 부당한 대우 앞에 순응해야 하는 상의까지 모두는 모두의 자리에서 고통스럽다. 생은 이다지도 남루해 기대어 설 곳을 잃은 사람들을 두고 사랑은 사치일 뿐. 영광의 떠남은 어쩌면 저 시절의 필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백 생멸(生滅)이 있다는 한 찰나, 찰나의 연속이 아니던가? 하면은 내가 억겁을 살았단 말일까? 그것이 시공을 뚫고 가는 섬광이었다면 나는 한 찰나를 산 셈이 된다. 그러나 한 생명이 땅과 하늘 사이에 있는 이상 기억은 생명과 더불어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한이로구나. 죄업이든 슬픈 이별이든 또는 만남이든 횡액이든, 기억의 사람들이 뿌리를 내렸던 곳이며 내 또한 뿌리를 내렸던 곳, 아아 기억, 수많은 기억들은 억겁의 길만큼이나 길고도 많구나. 서희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것처럼의 기억의 바다에서 자맥질하다가 간신히 현실로 돌아온다. 259p.
밑줄 친 문장에 한 번 더 줄을 치듯 눈 속에 꾹꾹 눌러 담듯 손으로 한 번 더 꾹꾹 눌러쓴다. 읽는 문장을 손으로 옮겨 써보면 배로 아프다. 저 마음을 지금의 나에게 투영해 본다. 기대할 내일을 잃은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에 기대어 지금을 버텨야 하는가. 생이 가장 잔인한 순간이다. 눈 뜨고 숨만 쉴 수 있다고 해도 지금을 살아야 할까? 바닥도 없이 휩쓸려 내팽개쳐진 현실이라 해도 허무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내일을 그래도 기다려야 할까? 그 ‘내일’에 닿으면 그때 ‘우리’는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내일’이 과연 있기는 한가. 마디마디가 서럽다. 고단하다 말하기도 죄스러운 저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이 숨 놓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다.
상의를 둘러싼 동사를 새삼 바라본다. 상의와 친구들은 그래도 사이사이 웃는다. 분노한다. 생각한다. 결심한다. 움직인다. 감정적 고리를 다 밀어 두고 오직 동사만 생각해 본다. 캄캄한 날들, 존재는 동사로 증명된다. 살아있다는 것만이 사실이다. 두루 공평한 불행을 견뎌 우리는 끝내 살아남아 우리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잔혹한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