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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씨 Apr 16. 2024

왜 수치는 언제나 우리의 몫인가

토지 5부 4권, 통권 19권

체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식이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날이면 날마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단장의 이별이나 굶주림, 오로지 하나 일본 왕에 대하여 충성하며 초개같이 제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총칼의 위협이 이 강산에 충만해 있건만 사람들에게 그것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 원인이나 결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으면서 다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다. 62p.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강제징용, 학병, 정신대, 위안부, 한꺼번에 쏟아지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를 좀먹어가고 있다. 누구의 영광을 위한 희생인가. 마디마디 뼈가 아리다. 역사적 사실로만 읽어도 충분히 참혹하다. 그 현실이 내가 알아온 인물들의 일로 등장하니 솔직히 좀 미칠 것 같다. 일본인 오가타의 입으로 전해지는 도쿄의 이야기는 허상 같다. 전쟁을 위해 천황을 위해 전선으로 나서라 외치며 점령국 조선을 착취하며 내지의 삶을 살아가던 일본인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존재했을 대의명분이 흩어지고 그 곳의 삶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인 상황, 생존을 위해 그저 숨죽이고 살았어야 했을 조선 사람들은, 우리는 왜 이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말이다. 피부 밑을 흐르는 생생한 분노가 지나간 시간 앞에 무력하다.     


“잔혹해, 너무 잔혹해. 학생들은 전선으로 내몰아서 죽이구 지식인들은 모조리 혼을 빼서 죽이구, 감옥에 가두어서 죽이구, 나 같은 존재는 모멸감으로 이미 박제가 되어버렸지만 그나마 글을 쓰고 연설을 하지 않게 되어 구슬픈 다행이긴 하지만 하하하핫 ······.”200p.      


권오송을 반역자로 몰던 사람들이 붓을 들고 천황을 칭송하고, 조선 청년들이 전쟁지로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이광수, 미당의 더러운 행적이 떠올랐다. 배움을 더럽히는 행위가 가장 비열하다. 지식은 그렇게 쓰이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와 진실이 아니라면 학문이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일까. 수단이 되어버린 허상 앞에 조선 사람들이 느꼈을 수치와 무력감, 패배감이 지금처럼 닿는다. 영화 <밀정>의 주인공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죽이러온 사람을 향해 외쳤었다. 일본이 망할 줄 알았으면 그랬겠냐고. 평사리를 휘저으며 개망나니 짓을 하던 개동이 면소에서 쫓겨나고 매를 맞는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억압하는 체제아래 그저 목숨이나마 부지하기 위해 숨죽이고 사는 거지 잊은 것이 아니다. 현실에 타협한 자들이 가장 극악의 친일을 했다. 이광수도 미당도 일본이 망할 줄 알았으면 그렇게 했을까? 개동이도 마구 날뛰다 결국은 쫓겨나 매를 맞게 되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까?      


미해군 지도 상 동해는 당당히 일본해가 되었고, 백두산은 창바이산으로 세계지질공원 등재가 되었다. 일본의 한일병합이 옳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의견은 밝히지 않겠다는 얼빠진 자가 이 나라의 공무원이기도 하다. 실시간 토지를 읽으며 가장 아픈 것은 저 역사를 살아남은 지금의 우리가 왜 또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매국노들의 농간에 휘둘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손으로 역사를 처벌하지 못한 과오가 백년의 시간을 되돌린다. 친일파로 살다 천우신조로 미군정에 붙어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들의 껄끄러운 근본을 세탁하는데 온 국민이 지지하고 있는 꼴을 볼 줄은 몰랐다. 하긴 이승만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도 보고 있는 판국이니 못 볼꼴이 뭐가 또 남아있을까.        


오오 조선의 청소년들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 적을 무찌르라!

썩어 죽을 놈들, 유다의 낙인은 이천 년에 이르기까지 소멸되지 않았음을 그 어찌 모르는가.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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