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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처럼 Feb 25. 2020

아스팔트 위를 뛰는 여자

직장생활 14년차의 끈질긴 출근 적응기

오랜만이다 너


새벽 5시 25분, 첫 알람이 울렸다. 바닥을 더듬어 휴대폰의 ‘멈춤’ 버튼을 눌렀다. 5분 뒤 두 번째 알람이 울렸다. 바닥에 던져 놓은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둑한 공간에 남편과 아이가 이불을 둘둘 말고 자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두 사람은 크고 작은 도장을 나란히 찍어 놓은 것처럼 같은 자세로 잔다. 나도 바로 그 옆에 누워 세 번째 도장이 되고 싶다. 자고 싶다. 조금만 더 자고 싶다.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또 다시 5분이 지났다. 퇴근 전 5분은 5만년과 같고 출근 전 5분은 5초 같다. 


올해 겨울은 유달리 큰 추위가 없었다. 새벽 출근을 하는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고 출근길이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눈 한번 오지 않고 칼바람이 얼굴을 긁지 않아도 매일의 출근은 새롭고 몸은 늘 무겁다. 그리고 지각의 위험은 도처에 도사린다. 


오늘도 그랬다. 여차하면 지각할 수 있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 때는 행동에 단 하나의 낭비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 생각이라는 것을 관두고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옷장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옷에 몸을 구겨 넣고, 패딩의 지퍼를 턱 끝까지 끌어 올렸다. 부츠를 양말처럼 단번에 신고 현관문을 닫았다. 계단을 뛰어 내려오며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를 확인했다. 아파트 단지를 잽싸게 가로 질러 버스 정거장을 향해 내달렸다. 손과 발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 내리막길에서 열차처럼 신나게 달리는 내 몸이 문득, 너무 멋지게 느껴졌다. 우리 딸 모찌가 이 모습을 봤더라면. 아마 ‘엄마 정말 잘한다, 엄마 최고!“라고 말해주었겠지. 100m 달리기에서 가뿐하게 1등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검은 유리창으로 비친 패딩 입은 아줌마가 이렇게까지 멋져 보이다니. 지각 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기애가 넘쳐나니 이래저래 나는 정신적으로 참 건강하다.  


곧 2차전이 시작된다. 회사 앞까지 가려면 광역버스를 타야 하는데, 마을버스에서 내려 5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지금 컨디션으로 보아 1~2분이면 정거장까지 갈 수 있겠지. 사거리에 있는 신호등만 협조해준다면! 사력을 다해 달렸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호흡이다. 계속되는 질주에 지칠 만도 한데, 지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달리기를 위한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달리는 돈까스’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또래보다 조금 통통한 체형에 늘 긴 머리카락을 귀 위로 바짝 올려 하나로 단단히 묶고 다녔던 친구 은아. 은아는 달리기를 잘했다. ‘통통하지만 잘 달리는 아이’를 굳이 그렇게 불러야 했는지. 그래,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나. 아무튼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한 체육선생님은 은아를 육상부로 섭외했고, 그 덕에 은아는 여름방학마다 타들어갈 듯 뜨거운 운동장을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운동장 구석에 반쯤 모습을 드러낸 폐타이어에 앉아 은아를 구경했다. 달릴 때마다 일정한 순서대로 입을 움직이는 모습이 꼭 허공에 바람을 내뿜는 붕어 같았다. 


“안 힘들어? 몇 바퀴 뛴 거야?”

해가 학교건물 위까지 내려앉고서야 연습이 끝났다. 이제 궁금한 걸 물어봐야지. 


“별로.”

거짓말이 아니었다. 은아의 이마 옆으로 땀방울이 물처럼 흐르고 있었지만 얼굴에 힘든 기운은 전혀 없었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뛰어?”

“별거 아냐. 내가 계속 뛸 수 있는 비밀 가르쳐 줄까?”

은아의 표정이 꺼드럭거리며 뽐내는 듯 했지만 왠지 그 이유가 알고 싶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는데, 오래 달리기를 할 때는 호흡만 기억하면 된대.”

“호흡?”

“응, 호흡. 하하 후, 하하 후. 딱 이렇게 하면 돼. ‘하하’ 할 때는 숨을 들이 마시고, ‘후’ 할 때는 내 뱉는 거야. 그러니까 두 번 반복해서 들이마시고 한번만 내 뱉는 거지. 이렇게 하면 산소를 더 많이 마실 수 있어서 오래 달릴 수 있대.”


이 기적의 논리가 얼마나 강렬하게 각인되었던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호흡을 기억하고 있다. 달릴 때 마다 ‘하하 후’를 외치며 그때의 은아의 얼굴과 팔다리의 움직임을 떠올린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다만 긴박한 순간에 처할 때 마다 은아의 비법이 내게 썩 잘 먹힌다는 것이다. 


어렸던 은아와 나를 떠올리는 동안에도 내 몸은 쉴 틈 없이 거리를 달렸다. 뜨거운 모래가 날리는 운동장이 사라지고 눈앞에 회색빛 차들과 신호등이 드러났다. 교차로다. 이제 초록색 신호를 받고 건널목만 건너면 버스를 탈 수 있다. 어어, 저 멀리 버스가 보인다. 녀석의 이름은 8100번. 머리 위로 선명하게 번호가 드러났다. 미끄러지듯 정거장에 안착한 버스는 승객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줄이 짧아질수록 조바심이 난다. 왜 이렇게 신호가 길지? 버스는 어느덧 문을 닫고 정거장을 지나 교차로 앞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대각선 너머에 발이 묶인 나는 울고 싶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제자리 뛰기라도 하고 있어야 신호가 바뀌면 바로 튀어 나갈 수 있다. ‘하하 후, 하하 후-’ 옆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뭐야, 왜 쳐다봐. 어차피 같은 버스에 타야하는 입장이면서. 아니다. 지금은 다른 쪽에 시선 따위 돌릴 여유가 없다. 목표에만 집중하자. 점퍼에 달린 모자를 바로 고쳐썼다. 


드디어 초록불, 초록불이다. 신호가 바뀌었다. 요이 땅!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적토마처럼 질주했다. 단거리는 스타트가 중요하니까. 상체가 고꾸라지도록 몸을 던졌다. 머릿속에는 오직 저 버스를 타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 검은 그림자가 스윽 하고 내 옆을 지나갔다. 아까 나를 흘끔 거렸던 바로 그 사람! 톰슨가젤을 잡아먹는 재규어의 속도가 바로 이런 걸까. 그는 순식간에 버스의 앞문으로 튀어가 여유 있게 앞문을 두들겼다.


얼빠진 얼굴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횡단보도 위를 뛰기 시작했다. 

‘하하 후- 으- 으아아아악!’





그냥 모른 척 해주시면 안 될까요?


고등학교 2학년 가을, 계주대회에서 넘어진 그 날 밤 악몽을 꿨다. 바로 무릎으로 달리는 꿈. 신기하게도 모가 난 바퀴로 변신한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저 앞서 가는 아이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 괴로웠을 뿐. 이후로도 무릎으로 달리면 어떤 기분일지, 정말 아프지 않은지 궁금했는데 오늘 새벽 알게 되었다. 스텝과 호흡이 제 마음대로 꼬인 내 몸은 발보다 오른쪽 무릎을 아스팔트에 먼저 내리 꽂았고, 나는 연극에 등장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도로 한복판에 무릎을 꿇고 한 쪽 팔을 앞으로 뻗어 엎어졌다. 


학교 운동장이라면 냉큼 뛰어 양호실로 도망칠텐데, 친구라도 한 명 옆에 있었다면 너무 아프다고 나 좀 일으켜달라고 투정이라도 부릴텐데. 지금 내 앞에는 탈건지 말건지 결정을 기다리는 버스만이 있을 뿐이다. 움직이지 않는 오른 다리를 질질 끌고 버스 앞으로 걸어갔다. 신호는 이미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버스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괜찮아요?”

버스 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네에....”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버스에 기어올랐다. 앞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들 보았겠지. 되도록 출입구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제 서야 펴지지 않는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뼈가 박살이 나면 이 정도로 아프려나. 무릎 주위로 별이 뱅글뱅글 도는 것만 같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다. 망할 싸구려 신발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라고, 나는 원래 잘 넘어지는 사람은 아니라고. 누군가를 붙잡고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이 겨울 교복처럼 덮어쓴 검은 옷도 싫고, 화장도 하지 못한 채 누런 얼굴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장의 무기는 무슨.... 이 순간만큼은 손에 잡히는 대로 원망하고 탓하고 싶다. 


모자를 코끝까지 내려 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속상하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버스를 세워 타겠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다. 그깟 출근이 뭐라고. 지각 좀 하면 어때서. 이 새벽에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고 방해하면서까지 무엇을 얻으려 한 걸까. 능력치가 다른 사람이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며, 오버하는 꼴이라니. 눈물이 난다. 아파서인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넘어진 김에 울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자는 아이 옆이 아닌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버린 내 모습이 억울하고 화가나서. 


회사생활 14년차, 알만큼 알고 겪을 만큼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나의 출근길은 어설프다. 비단 출근 길 뿐이겠는가. 내 페이스대로 뛰고 있다고, 요즘 나는 정말 잘하고 있다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다가도, 앞서 나가는 누군가를 보면 이내 흔들린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과 어쩌지 못한 일들로 상처받고 우는 날도 여전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징징대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그럼에도 벌떡 일어나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잠시 울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가고 일을 하겠지.  


문득 내게 회사생활의 호흡을 가르쳐주었던 수많은 은아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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