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상실과 시련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by 김성원

미국으로 복귀는 두차례 정도 연기되었다.

나의 보스 HR의 결혼식에 겨우 참석할 수 있었으니 1991년 12월 초쯤 이었던것 같다. 사막의 더위와 비행기 소음,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와 원활하지 않았던 기지들 간의 통신으로 지쳐있었던 내게 안정된 사회로의 복귀는 마치 휴양지에 온 기분이었다. 지연된 복귀 일정으로 HR의 베스트맨은 할 수 없었고 간신히 결혼식 참석을 위해 나름의 포상 휴가를 얻어 뉴욕으로 갔다.

가자마자 뉴욕 사무실로 갔지만 모든 옛 동료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사무실에 있었던 몇 친구들과 함께 짧았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우리 모두 HR의 결혼식이 열리는 교회로 갔다. 그동안 HR에게는 마이클이란 아들이 태어났고 그 큰 덩치에 안 어울리게 시종일관 싱글벙글 거리며 행복한 모습이었다. 피로연 파티에서 HR은 내게 건배 제의할 것을 부탁하였다. 베스트맨들이 돌아가면서 신랑신부를 위해 건배 제의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한가지와 앞으로의 행복을 비는 간단한 축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내게도 부탁을 하였다. 나는 일어나 잔을 들고 우선 세사람의 앞날의 행복을 빌어주는 말을 하였고 ‘HR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웃기려 했었던 애초의 계획과 달리 HR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순간 울컥하였다. 나의 떨리는 목소리에 HR는 단상에서 내려와 나의 등을 두드려 주었고 함께 참석했었던 뉴욕의 동료들도 모두 함께 나의 두드려 주었다. 그 모습에 모든 하객들은 박수와 함께 축배를 들자고 하였다.


Photo by Carlo Buttinoni on Unsplash


내가 HR에 대한 무한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한 것은 나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HR이 나를 펜타곤에 보낸 것은 나를 믿고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것이다. HR은 나를 믿었고, 그에 따른 업무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돌이켜 보면 그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방인을 믿었던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

만약 지금 다시 HR을 만난다면, 뉴욕의 어느 한적한 Bar에서 그의 생각을 듣고 싶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HR과는 그러한 기회를 영원히 가질 수가 없다.


HR은 해외 출장 중 폭탄 테러에 사망하였다.

HR과 함께 한 요원은 그나마 유품이라도 찾을 수 있었지만, HR은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는 참혹한 순간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HR에게는 어린 아들 마이클이 있었다. 함께 했던 우리 멤버들은 HR의 이 마이클이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HR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대신하며, 그를 위한 금전적 지원을 하기로 약속하고, 꾸준히 지원을 했었다. HR의 아들이 입학과 졸업식 때는 멤버 중 한 명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나는 HR 결혼식날 만취하여 친구의 도움으로 숙소로 잡은 호텔로 갈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 뉴욕 사무실에서 지원 업무를 하던 A의 노크 소리에 간신히 잠을 깰 수 있었다. 일본인 3세인 A모습만 동양인이지 일본말은 하나도 못하는 미국인 이었다. 걱정 되어 출근길에 들렸다는 그녀는 일본식 된장국과 죽같은것을 가지고 왔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왔지만 아마도 집에서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숙취를 감당하는 음식을 보았었던 기억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마웠고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지만 내 쪽에서는 A가 일본 사람이라 그리고 A 쪽에서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부모의 허락없이도 결혼이 가능한 성인들이었지만 결과는 헤어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몇년 후 A는 호주 사람과 결혼하여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그 정보를 얻기 위해 나의 직권을 남용한 행동에 대해서는 응분의 조치를 받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21년) 1991년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keyword
이전 21화63-3. 걸프전으로 본 미국의 전략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