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삶의 변곡점은 가끔 누군가에 의해 만나기도 한다. 그 변곡점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변곡점의 방향은 달라지기도 한다. 대학 은사님인 G박사님은 나를 변곡점으로 이끌었다. 당시(1988년) 나에겐 인생의 기회였고, 현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것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필연이었던 것 같다.
G 박사님은 나에게 은인이며,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어 주신 안내자였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책임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몫이며, 그 이후부터는 내 삶이며 나의 선택이었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만남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연으로 이어져 있다. 연을 통해 다음을 만들어 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임을 미국 공무원으로 살면서 알게 된 순간들이었다.
나는 G 박사님의 취업 제안에 감사한 마음으로 박사님을 만나기 위해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을 출발해 보스턴으로 향했다. 로간 국제공항을 나와 하버 터널을 지나 다운타운 쪽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인 웬트워스공대로 가는 길에 지나친 거리와 공원 그리고 Combat Zone이라 불리던 차이나타운은 학창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철부지 20대가 얼떨결에 도착한 미국 생활의 시작은 서툰 영어로 인한 소통의 불편함, 나와 다른 습관과 사회 관습 등으로 인한 문화 차이, 공기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처럼 한국에서 흔희 먹던 음식들 대한 그리움…. 일상이 낯설게 느껴지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 물어 물어 한식당을 찾아 헤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친구들과 한식당을 찾아 헤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길 위에서 출발할 때 각자의 귀에만 들렸던 영어로 모두 다른 방향의 길을 가리키며 우리끼리 논쟁했던 순간들….
어렵게 도착한 한식당에서 반가움에 밑반찬이 나오자마자 젓가락으로 반찬을 비웠던 순간보다 더 황당한 것은 제공된 반찬 접시 수만큼 가격이 책정되어, 밥 값 계산 때 주인에게 거칠게 철없이 항의했던 철부지들 모습…
여름이면 찰스 강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서양인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심...
차이나타운 안에서는 동양인인 우리가 조금 우쭐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
차이나타운 내에 24시간 운영하는 중국 음식과 술을 판매하던 식당들은 그나마 철부지 한국 청년인 우리 입맛에 맞아 즐겨 찾으며, 밤새 술과 음식을 먹었던 청춘의 한 문장을 만들었던 곳이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그때 그 모습과 함께 했던 이들이 스친다. 다들 잘 살겠지~
박사님은 항상 그랬듯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는 항상 나를 보면 이렇게 말했다.
“대화를 한국어로 할지 영어로 할지 택하라”(“It’s your turn.” “Pick up the language.”)는 농담을 하셨다.
서로의 안부를 한국어로 나눈 후 박사님은 진지하게 영어로 나를 추천 한 회사에 대해 한참을 말씀해 주셨다. 박사님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내 안에서 회사와 관련한 많은 질문들이 맴돌았지만 나에게 중요한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당시 미국에 남아있기를 원한 나에게는 어떤 회사이고,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 나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줄 것인지 그리고 그 회사의 스폰서로 내가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묻고 답을 듣고 싶었다. 박사님은 내 마음을 읽으신 듯 그 회사에 고용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과 취직을 통해 내가 얻게 될 혜택에 대한 말씀 해 주셨다.
지금 기억해 보면 당시 내 인생에 중요했던 것은 합법적인 체류를 위한 영주권이었다.
박사님이 회사와 관련한 설명들은 어렴풋할 뿐이다. 박사님은 70여 페이지에 달하는 고용 계약서를 꺼내셨고 잘 읽어보고 서명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회사 이름과 소재지 그리고 교육을 통과한 후 받을 연봉의 숫자만 확인한 후 맨 뒷면의 서명란에 이름과 날짜를 적고 서명하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교육을 통과해야 하는지 조차 정확히 모른 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 출근>
박사님과 만나 고용 계약서에 서명 후 맞이한 첫 월요일! 박사님께서 주셨던 안내서에 나와있는 맨해튼의 주소를 찾아 사무실로 향했다.
목적지보다 몇 정거장 전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거리는 출근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뉴욕을 왜 MeltingPot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다양한 모양의 고층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길을 걸으며 17세기 초 원주민으로부터 헐값의 물품교환으로 사들인 이곳을 세계 제1의 도시로 건설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목적지인 34가의 식스 애비뉴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탔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얼굴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문화에 나도 아침 인사를 하고 건물의 맨 꼭대기인 25층 버튼을 눌렀다. 내리자마자 안내 데스크가 있었고 신분증 확인 후 내부로 안내받았다.
내가 상상했었던 회사의 분위기와는 달리 강의실과 유사한 크기의 회의실이 사무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독립된 방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의 사무실이었다. 안내서에 나와있는 대로 어쩌면 이곳은 교육을 위한 장소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안내된 방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고 서로 악수하며 통성명을 하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참으로 어색한… 인생의 공통분모라고는 하나도 없을 법한 사람들과의 첫 대면에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도 많은 지는 몰라도 미국 문화의 하나인 것 같다.
25명 중 나를 포함한 동양계로 보이는 사람들이 5명 그 외 사람들은 백인들이 주를 이루었고 나머지는 중동 사람들과 인도나 파키스탄 계열의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백인들도 미국인이 아닌 유럽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그 25명 중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첫 출근 날 아침 9시 정각 총 25명의 사람들이 모인 회의실에 운동을 열심히 한 모습이 역력한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여러 개의 링 바인더를 들고 들어왔다. 그 모습 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할 수 있었겠지만 착석한 우리들이 본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듯 짧지만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본인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PS로 미 국방성 소속이며 향 후 5일간의 기본 교육을 담당할 사람이라고 하였다. PS의 소속이 미 국방성이라는 말에 나는 이 상황이 무엇인지를 추리해 보려고 주위를 잠깐 살폈으나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인지하고 있었다는 듯 아무런 동요도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박사님께서 주셨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서명했었던 고용계약서에 관련 내용이 있었다. 내가 고용 계약서를 읽지 않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PS는 여기 모인 25명의 선발 기준이 정부와 연계된 연구소의 대학교 교수님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고 하였다. 추천받은 사람들 중 선발을 거쳐 미국 전체에서 뽑혔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하였다. 그 말에 당시에는 으쓱해진 기분이었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G박사님이 왜 나를 추천하셨는지이다. 그를 만나면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PS는 향후 일정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17주 동안 사전 교육을 받는다고 하였다. PS 본인과는 1주 그리고 그 후 일정은 금요일 오후에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될 교육에서 탈락자가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우리 모두는 “우~”를 외쳤다.
PS는 25명 모두 사전교육을 통과하기를 바란다면서 중간 탈락자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별도의 동의서를 작성할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PS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모든 교육 참가자들의 분위기는 중대한 일을 앞에 둔 사람들처럼 숙연해졌다.
사실, PS의 소속이 국방성이란 말에 나는 군대와 관련된 업무를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영주권 취득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라는 예상에 내가 받을 교육에 대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17주 동안만 견디자 라는 생각에서 이제 반드시 통과하여야만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생긴 것이다.
미국의 공무원이 되려면 그 사람에 대한 신원조회를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짧게는 120일에서 최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말 그대로 뒷조사를 하는 것이다. 근무 부서와 취급할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과거 근무처 동료 및 상사는 물론 사는 곳의 이웃들까지도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왜 정부와 연계된 교수님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학생이 이기에 담당 교수의 추천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성과 주변을 조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PS의 말에 나는 궁금증과 극한의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사이 PS는 종이 한 장을 모두에게 전달하면서 서명하라고 하였다. 그 종이의 내용은 PS의 설명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으며 그 서명에 대한 책임이 어떤 것인지, 나는 3년 후 함께 교육을 받았던 한 친구로부터 알게 되었다. 또한, 왜 외국학생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도 교육을 통해 알게 되었다.
본 교육을 받기 전 15분간의 휴식이 주어짐과 동시에 우리는 서로 간의 어색함은 없어졌고 공동 관심사가 정해진 만큼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양 너나없이 서로에게 본인이 궁금한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저 어느 나라, 어느 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지 등의 보편적인 질문들만 오고 갔다.
앞으로 우리가 받게 될 교육이 어떤 것 인자? 교육 중 탈락한 사람이라도 교육 내용과 일정 그리고 일정에 포함된 모든 장소 및 경험했었던 것을 가족을 포함 본인 이외의 제삼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향 후 5년간 유출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몰랐다.
단지 국방성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추측을 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