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미 국방성 소속 교육 담당관인 PS 교관의 교육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필기구 사용이 허락되지 않았다.
필기구 사용을 못하게 한 것은 그 순간부터 발생할 수 있는 탈락자 대상으로 최소한의 보안 유지와 교육생 각 개개인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함이란 것을 나중에 알았다.
PS가 처음 들어올 때 갖고 온 그의 링 바인더들 중 하나를 펼치는 순간, 우리의 17주 교육은 시작되었다.
교육 내용은 공산국가를 제외한 미국과 수교한 국가 중 미국이 수출한 슈퍼 컴퓨터에 대한 모니터링 및 관리였다.
미국은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 협정 체결 후 미국이 생산하는 슈퍼 컴퓨터를 민간 용도에 한하여 수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슈퍼 컴퓨터 수출은 미국과 수교를 맺고 있는 우방 국가에 한하였다. 미국이 슈퍼 컴퓨터를 수출하던 때는 공식적으로 냉전이 종식되기 이전으로 우방 국가라도 미 상무부의 1차 검증과 국방성의 2차 검증을 통해 수출 여부가 결정되었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수출한 슈퍼 컴퓨터를 이용하여 핵무기 개발 연구과, 핵 모의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 사용 제한 및 제재를 위해 국방성이 수출된 슈퍼 컴퓨터가 목적과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수출국 구입처를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육을 담당하는 PS가 국방성 소속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시 슈퍼컴퓨터는 미국 Cray Research에서 생산되는 Cray와 IBM 그리고 일본의 Fujitsu와 NEC에서 생산한다고 하였다. 다만 일본은 1984년에 체결된 U.S.-Japan Supercomputer Agreement에 의해 일본 외 수출 금지와 연산 능력의 한계를 지정하고 있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의 기술 활용 범위와 판매까지도 좌지우지하는 패권국이었던 것이다.
PS의 주된 교육 내용은 슈퍼 컴퓨터에 관련된 내용으로는 성능, 가격, 운영, 비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1989년 당시 한대당 가격이 3천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기억하며 전기 사용량이 시간당 거의 200kw 정도였으니 웬만한 곳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컴퓨터였다.
처음 PS에게 슈퍼컴퓨터를 관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전공자도 아닌 내가 여기 왜 필요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교육생 중 컴퓨터 관련 전공자가 대부분일 수도 있다는 추측만 하고, 난 미국인으로 삶을 꿈꾸며 교육에 충실하였다. 교육이 진행이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컴퓨터 전공과 무관한 업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이유도 알게 되었다.
무서운 사실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PS의 교육은 우리가 수행할 업무의 당위성을 주지 시키는 내용과 슈퍼컴퓨터의 성능과 사용 방법 교육을 병행하였다.
PS는 더 이상의 핵무기 개발이 필요 없는 관계로 슈퍼 컴퓨터를 구매한 국가가 평화적으로 사용하도록 미국이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 모인 25명의 교육생이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고 하였다. PS의 교육 내용은 핵무기 개발 방지를 위한 슈퍼 컴퓨터 관리의 필요성이었고 이는 세계 평화 공헌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PS의 교육 내용이 모두 옳다고 믿었다.
훗날 깨달은 사실이지만 PS를 통해 받은 교육 내용의 핵심은 미국의 국익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지구 상 가장 강력한 나라는 미국이고 계속 미국은 최강 국가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당위성으로 포장하여 우리에게 교육시켰던 것 같다. 교육을 통과한 우리들이 하는 일은 슈퍼 컴퓨터가 수출된 국가를 방문하여 사용목적, 사용처 등을 기입하여 구매 목적 이외의 사용을 저지하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고, 실제 목적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수출한 슈퍼 컴퓨터를 통해 몰래 수집된 해당 국가 기관의 정보를 미 정보부로 전달하는 임무였다.
당시 나와 함께 교육을 수료받은 J는 미국 슈퍼 컴퓨터 CEO를 역임한 인물로 이었다. 그는 고향에서 불의의 사고를 겪었고 이후 내가 관리하던 슈퍼 컴퓨터의 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직원으로 근무하던 J가 그 회사의 CEO까지 올랐던 것이다. 2009년 J가 근무했던 회사는 다른 IT 기업에 합병이 되었고, 그 회사가 개발한 언어는 지금도 개발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어떠한 배경이 있을까? 미국의 속성을 나름 이해하는 나에게 그가 갖게 된 이력은 매우 흥미로웠다.
언젠가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J 네가 왜 우리와 같이 교육을 받은 거지? 미국인인 네가?"
내가 기억하는 것은 J는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 태생의 미국인이었다. 미국 정부와의 어떠한 인연을 만든 것인지? 만들어졌는지? 는 모르지만 그가 CEO 자리까지 간 것은 대단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불법 체류자가 된 나에게 미국 시민권은 절실했다. 시민권을 얻기 위한 나의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대학 은사님인 G 박사님의 추천으로 나는 미국의 정보부 외국인 용병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미국은 나에게 처음에는 동경이었고,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 동안은 애증에서 두려움으로 발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