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산으로 떠나다
2009년 여름
가슴 한 구석에 퇴사를 간직하고
회사에 휴직 신청을 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수도... 그런 마음에
퇴사 수준으로 몇 개월 전부터 업무를 정리하였다
3개월 간의 휴직 승인이 나왔다.
아내에게는 나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휴직할 것임을 말했고,
내 스타일을 아는 아내는 이해해 주었다.
휴직 승인이 난 후 난 바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대학 시험을 치른 직후 고등학교 친구 2명과 떠났던
무전여행이 떠 올랐다.
비둘기호를 타고
부산에서 강릉, 서울 그리고 부산으로...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걸었고,
가장 싼 여인숙을 찾아다녀고,
여인숙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1주일간의 여행은
나에게 깊은 추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혹을 넘긴 2009년 가을.
나를 찾는 여행으로 무전여행을 선택했다.
나를 찾는 여정의 시작은 부산이었다.
나에게 고향인 부산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시공간이었다.
무엇이 행복했고, 무엇이 그리도 힘들었는지
그때의 나와 대화하고 싶었다.
불혹의 나에게
스무 살까지 살았던 고향은
그때의 나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해 줄까?
작은 긴장감과 희망을 배낭에 넣고
난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더듬어 갔다.
여행 기간 동안 내가 느꼈던 것들은
소박했고 꿈도 많았고 하루하루 열정으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를 만나면서 부끄러웠다.
꿈과 열정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음을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현실을 탓하면
스스로를 불향에 묶어 놓고
꿈도 열정도 잃어버리고 사는 내 모습에...
한국에 사는 평범한 40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며
생존에 내몰리며,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당하는 삶에 내몰리는 느낌이다.
비관적인 나 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아이들은 한창 커갈 때이고
직장에서는 자신의 자리에 불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으로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무엇하나 제대로 선택할 수 없는 나이.
그러다 어떤 일로 삐끗하는 날이면 와르르...
참 서글픈 나이다.
그런 서글픔이 싫어 난 떠났다.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에서 미래의 나를 찾기 위해...
내 삶의 전환점이 된 것은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난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다.
밝고, 활발했던 내 성격은,
어머님의 부존재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우며 살아온 듯하다.
그 시간들을 돌이키면 참 힘겨워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일에 몰입하고
때론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으며,
현실의 힘듦을 잊기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부존재로 인한 심리적이며, 경제적 어려움을
나는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며, 이겨왔던 것 같다.
20대의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았기에…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했고,
선택에 있어 최선을 다했으며,
실패를 떠 앉으며 사람을 잃지 않으려고 했으며,
확신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으며
30대를 지냈고, 덕분에 사람들을 남겼던 것 같다.
숙제를 앉고 떠났던 무전여행...
이 여행길의 끝에서
난 어떤 답을 갖고 집으로 향하는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잘하는 일에
몰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순간을 즐기고,
결과는 다음을 위한 쉼이라는 것...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더 큰 두려움으로 맞서거나
두려움을 긴장감으로 즐기는 것뿐...
삶이라는 것이 자의 든, 타의 든
한 번씩은 이런 긴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차가 터널에 들어서면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왔던 길로 내가 가고 픈 길로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로 확신을 갖고
터널 끝을 생각하지 않고 가야 한다.
긴긴 터널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터널의 길이와 끝을 생각하지 않고
걷는 수 밖에는 없다.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지나간 행복을 더듬으며, 생각을 줄이고
지금 이 순간과 걷는 것에 집중하면서
불혹의 나약한 나를 비워가고 있었다.
꿈과 열정, 행복을 위한 행동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동력임을 어렴풋이 느끼며…
고향 부산에서 만난 그때 그 시절은 나는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세상의 중심은 우리라는 울타리임을 알게 되었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세상의 중심을 잃고 살았던 거다.
이제부터는
꿈과 열정, 행복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내 세상의 중심은 내가 만든 울타리이다.
고향이 나에게 준 이야기들은 관계였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살다 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일들로 힘겨워한다.
가끔은 그런 일들의 원인 제공자가
”나 “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족과 친구,
사회생활에서 만난 지인들 간
알고도 풀지 못하고,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 시간 속에
관계의 소원함이 커져 나중에는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어긋나 있을 때가 있다.
나도 그런 어리석음이 있었음을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현실에 쫓게 살아가는 나이,
나중에 나중에라고 미루고 접어두고 쌓아두고
이해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내 입장에서 무관심했던 관계들이
당사자에게는 참으로 큰 상처였음을....
미안함이 사무쳤다.
함께 해서 행복했던 사람들과는
행복한 이야기로 밤을 새웠고,
오해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과
오랜 시간 동안 술을 마시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근황을 들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아픔과 행복을 느꼈다
고향에 만난 우리네 모습들..
남편의 사업 실패와 병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이
자신의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이
곧 그만둬야 하는 일을 하면서
미래를 기약 못하는 이
기러기 아빠로
사람을 믿고 투자한 재산을 날려 버린 이
자신의 길을 찾아 과감히 직장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
돈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미래를 구축하고 있는 이
사업에 실패 후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돌보는 이
평범함 속에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서 행복했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대화 행복했고
오래 묵은 오해를 털고 올 수 있었서 행복했고,
무전여행을 허락해 준 아내 생각에 행복했다.
내 삶에 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아파트 벨을 누른다.
아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2009년 가을 불혹의 방황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