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shley Jeon
Aug 30. 2024
문화예술이 내 삶의 전부가 되게 해준 그림책
#오츠카유우조_글 #아카바수에키치_그림 #한림출판사 #2001년3월31일
나는 그림책과 시를 볼 때 가끔씩 온몸에 전율이 흐르거나 감동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림책 <수호의 하얀 말>을 오래전 딸들에게 처음 읽어줄 때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나왔다. 이 동화책은 마두금이라는 몽골 악기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한 내몽골 민담이라고 한다. 소년과 흰 말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가 어떻게 문화예술 일을 하게끔 내 삶에 이리도 큰 영향력을 끼쳤을까?
간략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옛 몽골에 수호란 양치기 소년 한 명이 살았다. 수호는 새로 태어난 하얀색 망아지를 한 마리 얻게 되었는데 세월이 하루하루 흘러갔고 그 망아지가 자라면서 늑대로부터 양떼를 지켜내는 등 수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경마대회에 참가하여 1등을 하게 되자 대회를 주최한 지역 영주가 그 말을 빼앗았고 본인의 생일 잔칫날 자랑하려고 말을 데리고 나왔다가 도망치는 말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을 맞은 말은 매우 긴 초원을 달려 소년의 품으로 돌아왔으나 수호의 집 앞에 이르러 쓰러지고 말았다. 말을 생각하면서 슬픔에 잠겨 있던 수호의 품 안에서 말은 숨을 거두었고 말이 죽은 그날 밤, 꿈에서 하얀 말이 나타나 자신의 뼈와 갈기로 악기를 만들어 평생 함께 해 달라고 말했다. 아침이 되자 수호는 말의 뼈와 갈기로 악기를 만들었는데 말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수호가 연주하는 마두금 소리는 초원을 퍼져나가 사람들과 동물들 모두에게 심금을 울렸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마두금의 기원이다.
일전에 동물농장이라는 SBS TV 프로그램에서 이 마두금 연주소리가 동물의 마음까지도 움직이게 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몽골 초원에서 기르는 낙타 중에 초산을 힘겹게 치른 어미 낙타가 새끼를 내치며 젖을 먹이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낙타 주인은 한참을 말을 타고 달려가 수의사를 데려오지 않고 마두금 연주자를 데려왔다. 마두금 연주 음악을 듣던 낙타는 잠시 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 새끼를 거두어 젖을 먹이는 장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음악이 진짜 동물의 심금까지도 울려 천륜을 거스르지 않도록 사랑의 마음을 이끌어 내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낙타의 눈물이란 다큐 영화에서도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수호의 하얀 말>은 수호와 말의 사랑 이야기와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그림도 아름다운 동화책이었는데 실제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마두금이라는 그 악기의 연주소리가 진정 동물들의 심금도 녹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이때부터 난 이 동화책 <수호의 하얀 말>을 공연으로 제작할 꿈을 꾸게 되었고 언젠가는 나도 문화예술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갑자기 나는 IT 업계에서 잘 나가던 직장을 뛰쳐나와 문화예술 일을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내게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무대 언저리에서라도 심장 뛰는 일을 해야겠기에 문화예술 기획·행정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주부들에게 ‘립스틱’을 바르고 공연 보러 오라는 ‘립스틱 (드라마) 콘서트’라는 제목의 마티네/브런치 콘서트를 처음으로 기획하여 10년간 장기 레퍼토리로 공연장에서 활용하게 하는 기획을 했고 첫 시작부터 좋았다. 물론 그 전에 아파트 부녀회장님 등 지역주민을 찾아다니며 표를 팔던 마케팅팀 일은 차치하고 말이다. 이후 ACC 예술극장 개관준비부터 국제창작레지던시, 최근 문화가 있는 날 <구석구석 문화배달> 충북형 기획사업인 ‘충북 웰니스 문화 피크닉’ 등 오래 문화예술 경력을 잘 쌓아왔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자면 20년 넘게 걸어온 그 길은 수호의 하얀 말의 고난만큼이나 가시밭길이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문화예술 일을 하던 중 아시아 국제 문화교류를 하는 기관에서 근무할 당시 몽골 국립관현악단의 전통 공연 그리고 최근 몽골 방문 시 차간 라바이 앙상블의 마두금 연주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때 <수호의 하얀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공연 제작을 꿈꿔 보았다. 이 그림책이 내게 모든 것을 버리고 문화예술계로 이끌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듯이 언젠가는 이 작품을 공연으로 만드는 꿈을 꾸며 오늘도 다시 한번 영차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