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팔레 나비들
한 10여 년 동안 참석해온 독서모임이 하나 있다. 연초 모임에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 의견을 묻길래,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자고 제안했다. 동화풍의 따뜻한 그림들과 무엇보다 제목에 이끌려서다. 나와 비슷한 맘이었는지 멤버들도 모두 좋다고 하며 새해 첫책으로 정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이 70이 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80세에 개인전을 열었으며 100세 넘어서까지 활동한 분. 이분의 에세이를 읽으며 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공감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중 한 대목은, 모지스 할머니가 어렸을 때 몸이 안 좋아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신이 벽에 그림을 좀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어머니는 이를 흔쾌히 승낙한다. 마리아 이모라는 분도 그림을 함께 그렸는데, 모지스 할머니가 보기에는 자기가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머니는 그림 그릴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난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부원으로 활동했고, 중학생 때는 수업이 끝나면 미술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운좋게 유화를 배울 수 있었다. 아무리 이사를 다녀도 그때 그린 그림 한 점은 애지중지하며 데리고 다닌다. 고등학교 가서는 본격적으로 화실을 다니느냐 아니면 공부를 하느냐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냥 공부 쪽을 택해 큰 갈등을 빚지는 않았다. 미술 쪽을 지망하면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더 많아 보였으니까.
또 한 대목은 모지스 할머니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을 써놓은 부분이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 부부가 한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이 일하는 만큼 나도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 사탕을 던져주길 기다리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항상 내 몫을 하려 노력했지요.”
-105쪽,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는 없습니다>
아이 키우면서 조금은 험난하게 회사생활을 했던 나는, 한때는 왜 나만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서글프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난 시간 내 밥벌이는 내가 해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메이우드한테 이런 재주가 어디 숨어 있었대?”
‘마이 그린 테이블’ 작업 시작하고 작품이 좀 쌓였다 싶었을 때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리기 시작했다. “글쎄요, 저도 이런 걸 정식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해볼 뿐이라서요. 그리고 이 작업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디자인, 공예, 설치미술? 그 어디에도 갇히지 않은 작업인지도 모르겠어요. 좀더 일찍 시작하면 좋았겠다 싶지만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