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그린 테이블 포스터들과 함께
초등학교 5년간을 딸아이와 단짝으로 지낸 친구가 겨울방학을 하기 얼마 전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엄마와도 연배가 비슷하여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많이 아쉬운 터였다. 그런 그 친구가 어제 파자마파티를 하러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친구와 먹을 간식들을 알아서 예쁜 그릇에 깨알처럼 데코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이렇게 내 손길이 덜 필요해지다니, 하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예상보다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부쩍 부모가 없을 때의 외동 딸아이의 삶을 상상해보게 된다. 예전에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친척집을 방문할 때면, 둘째에 대한 질문은 필수로 날아들곤 했다.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으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아이의 수는 한 명이었다. 퇴근해 짜증내지 않고 활짝 웃어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있으려면. 냉정해지려 애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아이가 외로워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되도록 안 하기로 했다. 아직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미리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미리 생각해보고 싶은 건 있다. 딸아이에게 어떤 걸 남겨주고 떠날 수 있을까. 나중에 딸은 어떻게 나를 기억하고 추억해줄까.
돈과 재산? 마치 물이 든 그릇을 들고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고 할 때 나는 그 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칠칠맞게 다 흘리며 달리는 유형인 것같다. "돈은 돌고 돈다고 생각해. 내가 꽁하니 갖고 있는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더 값어치 있는 데 써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돈을 꼭 써야 할 때 쓴다고 애썼지만 돈은 돌고 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물려줄 재산이 아마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지능? 공부 재능? 어렸을 때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할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던 나도 들어본 소리이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아는 세상은 참으로 좁았다. 이 세상에는 공부 말고도 해볼 만한 일이 많다는 걸 지금의 '데일리 키친 아트' 작업으로 딸에게 맛보기라도 보여주고 싶다.
세심한 관찰과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한 이 작업의 결과물들을 일종의 '아트 유전자'로 딸에게 물려주고 싶다. 그게 액자에 담길 수도 있고 영상물로 남겨질 수도 있으며, 맛과 냄새와 색감으로 아이의 감각에 새겨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일찌감치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걸 결정해서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뭘까. 아직 아이에게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