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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림 Feb 17. 2019

26.아름다움도 때로는 힘이 된다

꽃주전자


ⓒmaywood

그땐 왜 그렇게 미련하게 그랬을까 싶은 장면들이 간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왜 진작에 지금처럼 마음 단단한 아주머니가 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20대 대학생 시절과 회사 초년생 시절의 나는, 나도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원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무작정 사랑을 퍼주려고만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는 공부와 일로 파고들어가 짐짓 다른 고민은 없는 척했다.      


슬픔을 동력 삼아 지내야 하는 시기들이 그 이후에도 간간이 찾아왔지만 그 이전만큼 비장하지도 속상하지도 않게 된 건 의외의 소득이었다. 아마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게 된 덕분이리라. 그와 함께 세상의 다양한 결들이 가진 아름다움 또한 예전보다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는 안목도 더불어 자라났음을 느끼게 되었다.       


올 4월이 되면 '메이우드의 데일리 키친 아트' 작업을 시작한 지도 만 1년이 된다.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지?' '그런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래, 계속 해보는 거야' '점점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것 같군' 등등 벼라별 혼잣말을 되뇌이며 이 시간들을 지나왔다. 그럴 때마다 일상의 작은 아름다움들이 나에게 소소한 응원을 해주어 계속 해나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퇴근해 현관문을 열면 내가 중학생 때 그린 유화 액자가 먼저 나를 반긴다. 그 시절 나는 어떤 꿈을 품고 있었더라? 미술을 계속 하느냐, 아니면 공부에 전념하느냐 그 고민을 한창 했었지. 그때 그렸던 다른 그림들은 이사 다니면서 모두 사라졌지만 이 유화만큼은 부모님이 액자를 만들어주셔서 잘 보관할 수 있었고, 이후에는 남편이 액자를 새로 맞춰주어서 지금까지 함께 지내고 있다. 


거실 소파 근처에는 작고 노란 원형 탁자가 놓여 있다. 자칫 회색인 소파 색깔 때문에 칙칙해지기 쉬운 거실 분위기가 이 노란 탁자 덕분에 한결 밝아지는 걸 느낀다. 부엌 입구 식탁등에는 연두색 갓을 씌웠고 티슈 케이스는 빨간색으로 골랐다. 내 작업대가 있는 블랙 앤드 화이트 부엌의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 사이의 타일색도 (물론 전에 사시던 분들이 해놓은 거지만) 레드 계열인 걸 빼놓을 뻔했다. 


욕실로 시선을 옮기면, 식구들의 삼선 수건이 눈에 띈다. 난 짙은파랑색 선이 세 개 그어진 수건, 남편은 회색 삼선 수건, 딸아이는 빨강색 삼선 수건을 각각 쓴다. 한번 사면 오래  쓰게 되는 물건이라 조금 신경써서 골랐더니 물기도 잘 흡수하고 빨리 마르며 변형되지 않아 좋다. 

 

얼마전 일상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는 물건들을 만들어 제출하는 공모전이 있었다. 나는 내가 작업한 것들을 찍은 사진을 활용하여 엽서와 포스터, 휴대폰케이스로 시제품을 만들어 보았다. 물론 뽑히지는 않았지만 포스터 중 하나를 내 방에 붙여보려 고르는 중이다. 내 일상의 작은 아름다움 하나가 더 늘어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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