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2012~2013년과 2016년, 핀란드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혔을 때 세계가 놀랐다. 허나 정작 놀란 이들은 바로 이 나라 국민들이었다.
“엉?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이 나라 사람들은 자국을 스스로 우울한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 겨울이 길고 햇빛을 보기 힘든 북유럽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려니 한다. 실제 이들 나라에서 생활했던 외국인들은 이 나라 사람들이 잘 웃지 않고 외국인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게 보인다(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왜 이들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일까?
삶의 만족도와 긍정적인 감정의 차이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그건‘삶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높은 행복지수는,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활용한 지표와 관련이 있다. UN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나 OECD 더 나은 삶 지수(BLI;Better Life Index) 등은 일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행복의 지표로 사용한다. 가장 만족도가 낮은(불행한) 점수를 0으로 하고 가장 만족도가 높은 상태를 10점으로 설정해 11점 척도를 기준으로 점수를 스스로 매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만족도 대신 ‘긍정적 감정의 정도’를 측정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동남아시아의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이 이 지표의 최상위 국가군에 포진하고, 북유럽 국가들은 15~35위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는 인종적 특성이 강하게 작용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일차적인 조건이 유전적 요인이라 판단한다. 전 세계 피살자들의 30%가 몰려있는 지역, 마약과 납치, 치안 불안, 극심한 부패와 불평등으로 악명이 높은 중남미 국가 국민들의 긍정적 감정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원래 낙천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 외에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 사람들이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기에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높은 삶의 만족도가 꼭 긍정적 감정을 크게 느끼게 하거나, 긍정적 감정이 높다 해도 그게 잘 살고 있다(well-being)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행복지수를 조사함에 있어 삶의 만족도와 함께 긍정적 감정을 조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럼에도 삶의 만족도가 세계인들의 행복을 평가하는 일반적 지표가 되는 이유는 그 객관적, 보편적 성격 때문이다.
북유럽 행복의 핵심은 ‘평등’
북유럽은 강력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갖춘 선진적 복지국가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이 북유럽 국가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든 일차적 조건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행복국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져 보면 이것이 근본 요인은 아니다.
핵심은 ‘평등’이다. 올해 3월에 발간된 <세계행복보고서 2020>은 근대 초창기 유럽 대륙이나 러시아에서는 찾아볼 수 있었던 노예제나 봉건제가 북유럽에는 없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농부는 상대적으로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았고 다수가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참 거슬러 그 역사적 뿌리를 북유럽 지역의 엄혹한 기후와 척박한 토지, 그로 인해 약탈활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바이킹 공동체에 그 뿌리를 찾는다. 사회문화적으로는 검소함을 강조하는 루터교, 겸손과 중용을 가르치는 얀테(Jante)의 법칙과 라곰(Lagom)이란 관습에서도.
물론 북유럽에도 계층 간 충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핀란드도 좌우 내전이 발생해 30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으나, 20세기 초반에 역사적 타협을 이루어 사회적 신뢰의 초석을 쌓았다.
즉 북유럽은 20세기 대부분의 나라가 경험한 심각한 계급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더 신뢰한다. 사회적 신뢰는 보편적 복지제도를 정착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만일 북유럽 사회가 불평등이 심했다면 사회적 신뢰가 높지 않았을 것이며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도 어려워 행복국가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갈등이 심하고 분열된 사회에서는 모든 이가 만족할만한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평등은 계급적 담론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한 담론이라는 것을!
평등하면 서로 믿고, 행복해진다
북유럽국가의 행복 레시피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평등을 지향하는 신뢰받는 정부’를 구축하는 일이다. 부패없는 정부, 신뢰받는 정부라야 국민들이 세금도 거리낌 없이 내고 개혁도 지지한다.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사회갈등 또한 커지고 사회적 신뢰가 하락하기 때문에 정부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신뢰(공동체) 회복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북유럽국가가 행복한 나라가 된 데에는 정치권과 정부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시민들의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식(공동체 정신)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참조: <세계행복보고서 2020> 7장 ‘북유럽 예외주의: 왜 북유럽국가는 항상 행복한 나라 상위에 오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