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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Sep 22. 2019

목공 수업 #3 끌

수공구 중에 가장 위험한 것


 목수 연장 중에 가장 위험한 연장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끌이라 답하겠다. 목공 기계 중에는 컷팅기나 수압 대패처럼 한 번 다치면 크게 다치게 되는 무서운 기계들도 많다. 하지만 수공구는 손에 쥐고 사브작 사브작 사용하기 때문에 손가락 절단과 같은 큰 사고는 잘 안 난다. 그러니 기계에 비해 수공구는 덜 위험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끌은 다르다. 끌은 진짜, 진짜 조심해야 한다. 


 대패와 톱은 각각의 특징에 익숙해지고 관리만 잘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크게 위험하지도 않다. 끌도 굳이 따지면 익숙해지고 나서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연장인데, 익숙해지기 전이 항상 문제다. 예전에 마포의 한 목공방에서 직원으로 일 할 때 김 씨 아저씨라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끌질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 다듬을 나무를 왼손으로 누르고 오른손에 쥔 끌을 냅다 밀었는데, 끌이 미끄러지면서 자기 왼 손을 쓸어버린 것이다. 목수들이 사용하는 끌은 두꺼워 보여도 날 끝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나는 실제로 대팻날이나 끌을 갈 때면 날이 잘 갈렸는지 보려고 가끔 내 팔뚝의 털을 재미 삼아 밀어 본다. 끌은 면도날만큼이나 날카로운데 낭창낭창하지는 않다. 그렇다. 이건 완전 흉기다. 


이런 저런 목수 연장 중 가장 위험한 연장은 끌이다


 김 씨 아저씨는 목공 작업에 열중하다 보니 나무가 생각대로 잘 다듬어지지 않아서 흉기를 잡고 휘두르는 오른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다듬는 나무가 자꾸 흔들리니까 그걸 붙잡느라고 왼손이 끌이 향하는 방향 앞쪽에 위치해 있었다. 잠씨 삐끗했는데 날카로운 끌이 힘줄까지 자를 정도로 왼 손을 너무나도 쉽게 쓸고 지나갔다. 만약 끌이 날카롭지 않았더라면 살이 찢어지느라 고통은 심하지만 힘줄을 자를 정도로 깊이 베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합금으로 만들어진 스위스제 끌은 너무 날카로워서 살을 찢지도 않고 사르륵 베면서 너무나도 쉽게 지나가 버렸다. 힘줄이 잘리는 것은 손가락 절단과 비슷한 수준의 중상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의사 말로는 치료 후에도 손가락을 예전만큼 완벽하게 구부렸다 폈다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사고가 났을 때 나는 김 씨 아저씨 옆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바닥에 피가 쫙하고 퍼졌다. 공방장은 급하게 지혈을 해서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나는 뒤에 남아서 바닥에 피를 닦았다.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흉기를 자기 반대편 손을 향해 힘껏 휘둘러버리다니,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아찔하다. 그 일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 나에게 끌은 목수의 연장 중 가장 위험한 연장으로 등극했다. 


 평소에 그렇게 끌을 조심스럽게 다뤘는데 얼마 전에 끌질을 하다가 나도 손가락을 다쳤다. 사고가 난 공식은 앞의 이야기와 똑같다. 왼손으로 나무를 잡고 오른손으로 끌을 밀다가 삐끗해서 내 손가락을 스친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고, 금방 끝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끌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무를 사브작 사브작 끌을 밀었다. 그런데 그만 끌이 아주 살짝 내 왼 손을 스쳤다. 면도칼은 살짝 스쳐도 면도칼이고, 끌은 살짝 스쳐도 끌이다. 대일밴드만 붙이면 될 정도로 아주 얕은 상처였지만, 나는 굉장히 심하게 자책했다. 내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겨서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끌의 위험함을 알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끌을 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3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다듬을 나무를 먼저 클램프로 단단히 고정시키고 나서 작업할 것(절대, 절대 반대쪽 손으로 나무를 붙잡고 작업하지 말 것) 둘째, 끌을 두 손으로 쥐거나, 혹은 한 손으로 끌을 쥐고 다른 손은 끌 아래쪽을 받치는 자세로 작업할 것(왼 손이 끌 앞쪽에 놓이지 않도록 양손으로 끌을 다루라는 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끌에 힘을 줄 때는 팔을 휘두르지 말고, 어깨나 허리를 이용해서 천천히 묵직하게 밀어서 누를 것(팔로 끌을 밀면 컨트롤도 잘 안 되는 데다가 힘만 들고, 삐끗하면 끌이 앞으로 휙 하고 빠져나가서 위험하다) 


 간단한 작업이라고 나 스스로 정한 작업 원칙을 무시한 채 끌질을 하다가 다치다니, 이것 참. 내가 학생들 가르칠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고, 끌이 위험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얼마나 멍청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해서 정말 심하게 자책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아무리 쉽고 금방 끝나는 작업이라도 반드시 나무를 먼저 고정시키고 양 손으로 공손하게 끌을 잡아야겠다.


연귀맞춤. 사연이 있는 거울 프레임 - 2015년



 나의 이런 경험은 학생들에게도 전해진다. 우리 목공 교실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찾아왔다가, 얼마 못 버티고 도망가기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주 바뀌는 편이다. 새로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아직 배우지 않은 연장은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끌은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원칙을 배우기 전에는 절대 만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끌질을 하다가 다친 학생이 없다. 나는 다쳤지만 학생들은 안 다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끌질 수업은 '3가지 원칙(1. 나무 고정, 2. 두 손으로, 3. 어깨와 허리)'을 강조하는 것만 빼면 다른 수공구 수업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끌은 날 폭이 좁아서 숫돌 위에서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대팻날에 비해 날 갈기가 좀 어렵다. 그래도 대팻날을 갈았던 친구들은 끌도 곧 잘 간다. 끌은 대팻날과 달리 마지막에 각을 2단으로 줘서 마무리를 하면 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대팻날 보다 갈기가 쉽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쉽다는 거야? 어렵다는 거야?) 잘 갈려진 끌과, 무딘 끌을 각각 학생들에게 주고 끌질에 힘이 얼마나 다르게 들어가는지 직접 비교해 보도록 한다.(그래서 우리 수업에는 무딘 끌도 필요하다) 비교 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태가 좋으면 끌질이 이렇게 쉬울 수도 있구나 하면서, 끌을 잘 갈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한다. 


 하지만 끌질은 여전히 어렵다. 칼 금을 그어 놓고 금을 넘지 않도록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파내기 위해서는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는 인내심이 약한 편이다. 오래전 내가 가구 제작법을 배울 적에는 하루라도 빨리 멋진 가구를 만들고 싶어서 기본기를 다지는데 소홀했었다. 열 시간, 스무 시간씩 톱질과 끌질을 연습하기보다는 한 시라도 빨리 진짜 가구를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서 연습 과정을 많이 건너뛰었다. 그래서 나중에 수공구 사용법을 다시 배웠고, 잘못된 동작을 고치느라 더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나와는 달리 너무 욕심이 없어서 탈이다. 자기 스스로 멋진 가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습을 건너뛰고 뭔가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기 때문에 톱질이든, 끌질이든 시키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계속 연습을 한다. 기본기가 부족한 것을 시간과 싸워서 극복해낸다. 


 그래, 얘들아 그렇게 끈기를 갖고 연습하면 좋은 목수가 될 수 있어! 그리고 끌질은 항상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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