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물었다.
출근하면 배웅해주고 퇴근할 때쯤 밥을 차려놓는 남자는 어떠한지.
내 대답은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였다.
무엇이 널 감동받게 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배웅인지, 밥인지
둘 다 아니었다.
난 ‘시간을 쓰는 일’을 참 좋아한다.
그게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언정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한다.
평소 명품백을 안겨주는 남자보다 편지를 써주는 남자가 좋다고 말한 이유도 그저 개념 있는 여자인척 코스프레를 하기 위한 답변이라기보다 결재를 하는 시간보다 편지지를 사서 적을 말들을 생각하고 여러 번 읽어보며 수정하기도 하며 처음부터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의 이 모든 과정에서 나를 생각했을 것이기에 들어간 시간을, 공을, 마음을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술의 ‘미’ 자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나 미술관을, 도서관을, 건축물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관련 지식은 없을지언정 그들이 무수한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담아낸 그 마음을, 시간을 사랑한다. 존경한다.
같은 맥락에서 남녀로서 소개팅이나 데이트를 하건, 친구 등의 사람을 만나는 관계에 있어서도 나는 티가 나는 화려한 선물보다 소리도 흔적도 티도 안나는 시간을 들이는 편이다.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어떤 분위기의 식당을 좋아하는지, 선물을 할 때에도 현재 가장 필요해 보이는 것은 무엇인지 참 많이 관찰하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호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러한 나에게 있어 아무 데나 가자,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뭐든 괜찮아 등의 1초컷 대답들은 서운함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을 넣어 생각하는 잠깐의 시간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 너와 나의 시간이 그 정도로 별개 아닌 것만 같아서 괜스레 아쉽고 서운해진다.
세상은 바쁘다. 점점 더 바빠진다.
사실 때때로 나조차도 나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내 내면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사는 게 일쑤이다. 모순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간을 들이는 일을 더 좋아한다.
예쁜 화장을 한 모습이 아니라 눈곱을 낀 채로 배웅 나올지라도 전날부터 배웅을 해야지 하고 잠들었던 그 마음이, 퇴근하는 날 위해 멋진 호텔에서의 9첩 반상 대신 몇 시간을 들여 뭉개진 달걀프라이 하나를 내어줬다 할지라도 그 과정과 노력이 묻어있는 시간이 참 좋다.
이 모든 이야기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때론 효율성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갈수록 더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세상은 분명 다가올 것이며, 다가오고 있기에.
그 옛날 쮸뼜거리며 “혹시..시간 있나요?”라고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만 나에게 허락해주겠소’ 뉘앙스의 데이트 신청 감성이 조금은 남겨졌으면 좋겠다. 촌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시간의 결계 밖에서 시간을 초월할 수 없다. 하다못해 누군가 공을 들여 돌봐주지 않는 돌 틈새의 풀들 조차 자라는 데에는 ‘제 자신의 애씀’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쁜 만큼 더욱 소중해져 버린 나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누어주고, 누군가를 위해 배려, 고민, 사랑, 우정, 애틋, 열정, 몰두, 배움 등의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는 여유 한 조각 정도는 마음 한편에 남겨뒀으면 좋겠다. 아니, 바빠지고 화려 해지는 세상에 맞서서 기를 쓰고 붙잡았으면 좋겠다.
*사진은 포르투갈-오비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