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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ubless Nov 23. 2022

삶의 무게가 유독 무거워지면…

  삶은 지독하게 불공평한 것 같지만 또 그만큼 공평함의 저울 위에서,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정의내리지 못할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구에게나 때때로 삶의 무게가 유독 무거워지는 날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무게를 이기기 위해서 혹은 잠시 망각하기 위해서 저마다의 방법 하나 쯤은 갖게 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산책하기, 운동하기, 글쓰기.


누군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3개만 말하시오.’라고 묻는다면, 산책은 주저없이 그 3위 안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첫번째, 사막에서 살기 이전엔 그저 천천히 걷는 게 좋아서 산책이 좋았었다. 하지만 두바이에서 5년 이상을 살다보니 어느새 초록 초록한 나무와 알록달록 꽃들이 너무 소중해졌다. 예쁜 식물들을 보며 풀냄새를 맡으며 걷는 산책은 내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엔돌핀을 깨워주는 것만 같다. 그야말로 행복지수 상승 보장인 것이다. 두번째, 내 무드(mood)와 그 날의 산책로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걸 좋아한다. 풍경과 노래에 취해 흥얼거리며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할 때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다.


내가 하는 운동은 필라테스. 필라테스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운동이다.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하늘에 떠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날 짖누르는 중력 때문이었는지, 성인 남자들도 땀을 흘릴 만한 작업 강도(work load)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많은 승무원은 허리통증을 호소한다. 나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허리가 아파 그야말로 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다. 재활을 공부하신 스페인 선생님을 통해 입문하게 되었고, 운동을 다녀온 날은 밑에서 날 끌어당기는 듯했던 허리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짐을 느껴 빠져들게 되었다. 그 가벼워짐과 근육의 뻐근함이 시원함처럼 느껴지는 것이 좋아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다. 필라테스는 주로 내가 쓰지 않는 근육을 단련시키는 경우가 많아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쓰던 근육들을 쓰게 되기 때문에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 수 없으며, 기구들을 이용해 운동하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다. 내 초기 스승님인 요셉(Yosef)은 지도 제시 사이사이에 습관처럼 날카로운 소리로 “집중해!”와 “조심해!”라는 말을 하며 잡생각을 버리고 집중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었다. 늘 켜져있는 컴퓨터 같은 나에게 있어 필라테스는 필사적으로 잠시 비워낼 수 있게 해주니 이 시간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글로 적는 순간을 좋아한다. 이전의 나는 그저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의 유치원을 다니면서 아이들과의 나의 일상 대부분을 전사하고 글로 그 의미를 옮겨내는 작업을 대략 5년간 하게 되면서 나는 내 느낌을, 생각을 글로 적는 그 순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성이 이성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탓에 마음이 힘겨울때면 모든 게 멈추는 느낌이다. 또한 이전부터 줄곧 생각하며 정리했던 것들에 대한 것이라면 ‘나만의 가치관’이라는 말로 정리해두어 언제든 꺼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주제에 관해서는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 글로 적으면 내 마음도 복잡한 생각도 정리되는 기분이다. 물론 글로 마주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마음도, 상황도 종종 있다. 그럴땐 서랍 속의 내 일기를 꺼내어 마음에 드는 글을 다시금 다듬어 문서화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이 문서들을 엮어 한 권의 책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에 충실하게 마음을 담다보면 그 순간만큼은 작업에 빠져 복잡한 마음도 상황도 잊어버릴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이 3가지 방법 모두 극복할만한 시련이었을때 말이다. 어떠한 방법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주저앉은 것 같은 나날도 있었더랬다. 그 땐 그냥 울었다. 충분히 울고 아파하는 수 밖에는 그 길을 지나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디론가 빨리 도착해 상황이 끝나기만을, 평온함이 전혀 들어올 곳 없는 이 마음이 소진되기만을 기다렸다. 지나가지 않을 것같던 시간도 결국 지나더라.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지금  시간을 삶의 무게가 유독 무거워지는 나날로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픔과 힘듦에 있어 어떤 위로도 되지 않음을 알기에 차마 토닥일 수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없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하며 시간의 지남을 견뎌냈으면 좋겠다. 그대들과 같이  시간에 고통스러워 하며 시간을 견뎌내는 이는 많다는 것이다. 당신만 특별히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저 불행이라는 아픔이 잠시 찾아온 시간일 뿐인 것이다. 반드시 지나가는 시간일 것이기에 살아내자.


견뎌내자.


(2020.08월의 지옥 그리고 2021.04월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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