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기 여섯 번째
우에노 역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꽃집이 보이길래 잠깐 구경해 본다. 호주는 여러 기후와 조건들이 한국과 다르다 보니 가끔 정말 난생처음 보는 식물과 꽃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한국에서 보던 익숙한 계절 꽃들을 만나면 아무래도 좀 반가운 마음이 들고 만다. 2월의 도쿄에선 이름을 아는 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고개를 꼿꼿하게 세운 튤립이 고왔고 조금 일찍 꽃을 피운 벚나무 가지가 귀여웠다.
다음 날은 조식 먹고 바로 공항으로 가는 일정이다 보니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 이날은 서쪽에서 동쪽까지 동선이 컸다. 해외에 살다 보면 SNS에서 핫한 음식점이나 카페에 혹하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을 가장 건드리는 건 명동교자 같은 익숙하고 오래된 곳들이다 보니 이 날은 지난번 여행에서 좋았던 곳들을 재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채웠다. 새로운 맛도 좋지만 점점 아는 맛을 찾게 되는 건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츠지한과 함께 4년 만에 찾은 우에노 역에 위치한 야끼토리 분라쿠. 오후 5시쯤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테이블이 거의 만석에 가까웠다. 다행히 바석에 몇 자리가 남아있어서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착석. 일단 나마비루 한 잔 시키면서 시작했다. 지난번에 신나서 이것저것 시켰다가 너무 배 불렀던 기억을 교훈 삼아 이번엔 닭껍질 꼬치, 파 꼬치, 니코미(소곱창 조림) 이렇게 세 개만 주문했다. 뜨끈뜨끈한 니코미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닭껍질과 대파 꼬치를 번갈아 가며 먹고 있으니 역시 멀리까지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 익숙한 음식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다시 찾고 싶은 곳이 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다.
이번 도쿄 여행 선물 부문에선 프레스 버터 샌드가 맹활약했다. 휴가 가면 항상 선물 사 오는 게 고민인데 오미야게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 갈 때면 아무래도 걱정을 덜게 된다. 맛도 좋고 근사한 패키지로 포장된 간식/과자류의 가격이 천 엔 대부터 형성되다 보니 그중에 좀 더 취향인 것들을 골라오면 된다. 사실 호주에선 와인을 제외하면 선물로 사갈 것이 마땅하지 않아서 이번에 한국 친구들의 선물은 대부분 도쿄에서 구입했다. 그중 프레스 버터 샌드의 지분이 가장 컸고 넘버 슈가, 그리고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 바나나, 히요꼬, 시로이 코히비또를 고루고루 담았다. 프레스 버터 샌드는 맛도 맛이지만 견고하고 아름다운 패키지 덕분에 친구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
돈키호테에선 샤론 파스를 추가로 구입하고 친구에게 부탁받은 소화제 오타이산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효과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대용량 감기약을 쟁여볼까 했는데 정말 인기가 많은 건지 롯폰기 점에선 품절돼서 구입하지 못했다.
마지막 야식은 롯폰기 아후리 라멘. 사실 전날 아후리 라멘을 방문했지만 영업 종료 시간인 11시가 다 돼서 도착한 탓에 다른 라멘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일본 라멘집은 대부분 자정 넘어서 까지 영업하겠지 하고 방심한 탓이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영업시간을 야무지게 체크하고 재도전. 지난번 방문 때는 노란색이었던 로고가 흰 바탕으로 변해 있었는 걸 보며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라멘집에는 티켓 자판기라는 신문물이 존재했지만 아후리 키오스크 자판기 앞에 서서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도 일본은 아직 현금 문화지! 하고 엔화가 든 지갑만 챙겨 왔는데 키오스크에서 카드 결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순간 다시 숙소에 다녀와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찰나에 직원분이 와서 도와주셨고 다행히 일본은 애플페이 결제가 가능해서 순조롭게 주문을 완료할 수 있었다.
유자가 들어간 라멘을 처음 먹어본 건 교토에서였는데 당시 돈코츠 파였던 내게 유자 라멘은 너무나도 생소하고 신기한 라멘이었다. 라멘에 유자를? 왜죠?? 하고 물음표를 잔뜩 찍었지만 몇 년 전부터 식초가 주는 감칠맛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식초와 레몬즙 넣은 요리를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먹은 아후리 라멘은 처음 먹었을 때 보다 몇 배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마지막 일정인 아후리 라멘까지, 앙코르 도쿄 음식 투어를 성공적으로 종료하고 나니 이젠 한국으로 돌아가도 여한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네, 물론 그건 거짓말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처음으로 조식 뷔페 시작 시간인 7시에 맞춰서 갔는데 한가한 9시와 달리 오히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나 빼고) 모두들 부지런 새였군요..
조식을 먹은 후엔 가볍게 아침의 도쿄 타워를 눈에 담고 왔다. 전날 아후리에서 받은 라멘 티켓은 체크 아웃을 도와주신 직원분께 드렸다. 모쪼록 저 대신 아후리의 유자 라멘을 즐겨주시길.
롯본기에 위치한 숙소에 묵으면서 "롯본기 좋아!"를 외쳤지만 도쿄국립신미술관을 제외하면 이번 여행에서 막상 롯본기 힐즈와 미드타운을 포함한 롯본기는 쏘옥 빠져있었다. 예전처럼 지브리 미술관이나 디즈니 랜드, 오다이바를 가는 것도, 심지어 롯폰기 힐즈도 일정에 없었는데 왜 3박 4일 여행 내내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변화가 빠르고 항상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이 도쿄라는 생각이 들었다. 3박 4일 즐거웠습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