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nald Jul 03. 2023

대청소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킹스 벌스데이 @ Coogee

4주 전에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딱 1년이 되었다. 이사 시기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금요일 저녁에 헐레벌떡 이사를 마치고 월요일 퀸즈 벌스데이로 이어지는 연휴 내내 열심히 청소를 했던 기억 때문이다. 작은 스튜디오에 둥지를 트는 일은 생각보다 긴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연휴 직전에 이사를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작년까지 퀸즈 벌스데이였던 공휴일이 찰스 3세의 즉위로 올해부터 킹스 벌스데이로 바뀌었는데 다행히 작년과 달리 올해는 별일 없고 평화로운 연휴를 보낼 수 있었다.


1주년 기념으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아예 6월을 대청소의 달로 정하고 타이밍을 놓쳐 미루던 일들이나 오랫동안 흐린 눈으로 방치해 둔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기로 했다. 매주 하는 청소기 돌리기와 화장실 청소가 아닌 묶은 때를 벗기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터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번 대청소에는 당연히 유리창 청소도 포함되었는데 목표물은 베란다 발코니에 있는 커다란 통유리와 키친에 있는 창문이었다. 부엌으로 난 유리창은 열고 닫는 방식 때문에 손이 닿지 않는 구조인데 이걸 반드시 닦아보겠다고 나는 지난 한국 휴가 때 자석형 창문닦이라는 신문물도 구입해오지 않았던가.


의미심장하게 하루 날을 잡아 대청소의 날! 같은 것을 지정하지 않은 이유는 '밀린' 혹은 '묵은'이란 형용사가 붙은 일들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은 일 하나를 마치고 달라진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생각보다 달라진 모습에 신이 나서 다음 청소에 일찍 착수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래서 하루는 샤워 부스 청소, 다른 날은 유리창 청소, 하루는 선반 위 먼지 닦기, 이런 식으로 업무를 가능하면 잘게 쪼갰다. 이러다 보면 눈 깜짝할 새에 2~3주가 흐를 것이고 그럼 어느새 대청소도 끝나 있을 것이다.


대청소 전 미리 회피하고 겁먹었던 시간에 비해 오랫동안 집안 여기저기 널려 있던 물건들의 새 자리를 찾아주고 샤워 부스의 물때와 곰팡이를 제거하고 유리창을 닦는데 드는 실질적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청소당 길어봐야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허무하기까지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걱정하며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할 시간에 진즉 해치울걸!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미룰 시간에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면 아마 이렇게 집안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밤마다 샤워 부스에서 반짝이는 타일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고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볼 때면 마치 창문을 열어놓은 듯 시야가 환했다. 책상 위에 오랫동안 올려놓았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서랍장에 넣었더니 어느 순간 비좁다고 느껴졌던 책상이 제법 여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잠을 자고 매일 생활을 하는 공간이지만 시간을 내고 공을 들인 탓일까 대청소를 하고 나서 조금 더 쾌적해진 이 작은 스튜디오가 나는 더 좋아져 버렸다.


하반기에는 좋아하는 것들로 주변을 더 채워볼 예정이다. 여전히 집이 꽉 찬 느낌은 없지만 작년 1월에 한국에서 호주로 국제 이사를 했을 때나 작년 6월에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 왔던 때보단 제법 살림살이가 늘었다. 다소 휑했던 스튜디오에서 이젠 제법 생활인의 공기가 느껴진다. 이번 한국 휴가에선 책 10권을 들고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엔 빈 공간이 더 많다. 아직 책장이 여유로워 좋고 이번에 물건을 정리하면서 새로 생긴 공간에는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채워 넣을 것이다. 일 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그래서 조금 기대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도쿄에 아는 맛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