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nald Dec 16. 2023

이번주에는 뭐 먹지?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 (1)

아침에는 주로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편이다. 그날의 날씨와 점심 메뉴를 따져보면 저녁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 오늘 저녁 메뉴는 이걸로 하면 되겠네.'하고 생각하다 보면 아무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출근길엔 기분 좋은 것을 생각하는 게 좋으니까. 그런데 정말이지 어떤 날은 갑자기 무슨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음식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아귀찜이라든가 아귀찜이라든가 아귀찜 같은 음식이 바로 그렇다.


그날은 시드니에서 매서운 추위가 한창 이어지던 6월이었는데 퇴근길에 불현듯 뜨겁고 매콤한 아귀찜이 생각났다. 왜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던 아귀찜이 갑자기 먹고 싶어진 건지 이유를 따질 겨를도 없이 당장이라도 아귀찜을 집어삼키지 않으면 정말이지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예전에 종종 아귀찜을 먹으러 가던 한식당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그렇다면 이 메뉴를 한인타운 어느 식당에 가야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한 밀키트 배달 업체가 떠올랐다. 작년에 친구들과 시드니 근교로 여행을 갈 때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해 간 곳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 년 만에 웹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 걸 다음 주 메뉴에 매콤한 아귀찜이 떡하니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어떤 운명 같은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비록 그 대상이 아귀찜이었지만.


그곳은 겉절이, 파김치, 깍두기 같은 김치부터 국과 찌개류, 그리고 안주 메뉴까지 매주 메뉴를 바꿔가며 일주일에 2회씩 한식을 배달해 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다가 추운 날에는 역시 맵고 칼칼한 게 땡기는 게 한국인의 국룰인 걸까 잠시 생각했다. 마침내 주문한 밀키트를 회사로 받아 퇴근하던 날은, 제법 무게가 나가는 아귀찜이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소원 성취하듯 오독오독한 식감의 미더덕과 1톤의 콩나물을 먹어치웠더니 비로소 아귀찜에 대한 어떤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날 이후 1~2주에 한 번씩 마음에 드는 메뉴가 올라오는 날이면 이제는 어김없이 주문 버튼을 클릭한다. 평일 낮 시간대에 배달이 되다 보니 회사로 받은 후 집으로 가져와 저녁에 조리를 해 먹는 식이다. 외식에 비하면 포장 용기를 뜯어서 재료를 볶거나 끓여서 상을 차려야 한다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이렇게 하니 식당에선 접하기 어려운 음식을 다양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되어 요즘 절찬 이용 중이다. 일인가구로 산 기간과 비례해 요리 실력도 쑥쑥 나아지면 좋으련만 퇴근 후에는 대체로 좋아하는 영상을 찾아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할 기력이 없기 때문에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외식과 요리의 중간지점을 찾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밀키트를 이용하면서 줄어든 건 외식 횟수뿐만 아니라 육류의 소비였다. 예전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그 횟수가 절반으로 확 줄어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고기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그렇게 자주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건 그냥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의 선택지가 너무 적어서 그랬던 걸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기를 구워 먹는 것만큼 쉽고 맛있는 메뉴도 잘 없지 않은가.



지난 추석에는 모둠전을 비롯해 각종 음식을 주문해 냉장고를 그야말로 그득그득 채웠다. 생선전과 호박전, 부추전과 양념게장을 상에 올리고 지글지글 돼지갈비를 구워서 쌈을 싸 먹으니 한국에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났다. 손수 만든 단출한 식단 구성을 일 년 넘게 먹었더니 원래 손이 잘 가지 않던 밑반찬이 어느 순간 너무 맛있게 느껴졌고 얼마 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쌈야채에 푹 빠져버렸다. 입맛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던데 말로만 듣던 이야기의 당사자가 되니 놀랍고 머쓱했지만 제철음식까진 못 챙겨 먹더라도 가능하면 다양한 메뉴를 잘 챙겨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매주 밀키트 메뉴가 업데이트되면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주문창에 들어가 메뉴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이번주에는 뭐 먹지?'






〰️ 밀키트의 장점과 장점 2탄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 산, 그리고 속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