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여행기 세 번째
'어디 보자... 그러니까 SIM을 갈아 끼울 필요도 없단 말이지.'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해서 수화물을 기다리는 동안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한국에서 구입해 온 eSIM을 등록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갈 때면 항상 도시락 와이파이나 실물 유심을 사용해 왔는데 최근 eSIM을 구입/사용해 본 친구들이 하나같이 간편하고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서 그렇다면 이번에 나도 한번, 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출발 며칠 전에 장바구니에 담아둔 eSIM을 구입하자 큐알 코드 하나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이게 끝이라고? 조금 의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출국하며 공항에서 기계를 픽업하거나 유심을 집으로 배송받을 필요 없다니 정말이지 듣던 대로 과정마저 간편했다.
처음이라 조금 버벅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수화물이 나오기 전에 무사히 eSIM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성공적인 첫 eSIM 연결을 축하하듯 연달아 카톡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치앙마이에 잘 도착은 했는지, 거기 날씨는 어떤지를 묻다가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잡담을 이어나가는 친구들의 대화를 훑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마침 저쪽에서 낯익은 러기지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는 것이 보였고 얼른 그것을 잡아채서 공항 카트에 실었다. 휴, 일차 관문은 완료했으니 이제 숙소로 가볼까?
치앙마이 두 번째 관문은 카카오 택시, 우버와 같은 택시 어플 Bolt를 사용하는 일이었다. 태국에서 이용하는 택시 어플은 Bolt와 Grab 두 종류인데 여행기를 보다 보면 어떤 이는 전자를, 다른 이는 후자를 추천해서 그냥 어플 두 개를 다 설치해 놓고 현지에서 가격을 비교해 보기로 했다. 목적지에 숙소를 입력하니 예상 소요 시간은 10분, 그런데 두 개의 어플이 각각 다른 요금을 보여줬다. 당연히 가격이 더 저렴한 어플로 택시를 불렀고 그렇게 치앙마이에서의 이동 수단은 Bolt로 당첨되었다.
입국하는 여행객이 많은 시간이었는지 2~3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내 눈앞에 택시 한 대가 등장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핸드폰에 뜬 차량 번호판이 보이자 무슨 오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저예요, 저!' 제스처를 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깜깜한 택시 안에서 태국어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낯선 풍경을 열심히 눈에 담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휴, 그래도 어찌어찌 무사히 숙소에 왔구나 싶어 또다시 한숨을 돌렸던 모먼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은 처음으로 환전을 하지 않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갈 때면 식비, 교통비, 쇼핑 등등을 합쳐 하루에 얼마를 사용할지를 계산하고 조금 넉넉한 금액을 환전하곤 했는데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선 놀랍게도 이 과정이 생략가능했다. 바로 GNL 큐알 결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GNL은 태국에서 사용하는 간편 결제 수단으로 한국에서 toss 앱을 통해 한화를 입금하면 실시간 환율이 적용되어 현지 통화로 결제가 가능했다. 그리고 남은 돈은 다시 한화로 재환전이 가능하다니 이렇게 편리한 걸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종종 GNL 결제가 가능하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하여 내 경우에는 100불짜리 호주 달러를 비상금으로 가져갔지만 여행 마지막 날까지 환전소에서 환율을 확인하고 환전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점이나 마사지숍은 물론 길거리에 있는 과일 주스를 파는 곳에서도 GNL 결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도착하자 택시 기사에게 익숙한 듯 "큐알?"이라고 묻자 큐알 코드가 찍힌 종이를 내밀었다. toss 어플을 켜고 큐알을 스캔하는 것으로 택시비 결제를 완료했다. 생각해 보면 공항에서 숙소까지 온 게 전부인 하루였지만 처음인 게 많았던 여행이기도 해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무사히 신고식을 치른 뒤, 다음 날부터 치앙마이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은 볼트와 함께, 모든 결제는 GNL로 하면서 정말 순조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공항 면세점에서 동전을 털어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은 여행이라니... 그러니까 이번 치앙마이 여행은 그야말로 미래 도시로의 여행이었다.
이 글은 오래전에 본 [미래도시를 가려던 계획이 있었다]라는 노난님의 글을 떠올리며 썼다. 글쓴이는 구글로 몇 년 동안 상해를 공부하다가 2019년에 마침내 '미래 도시' 상해로 진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녀가 구글로 공부한 상해는 어떤 도시냐면 바로 현금, 그리고 카드마저도 필요 없는 도시. 하지만 알리페이와 택시 어플 디디가 있다면 무적이 될 수 있는 도시였다. 구글만 믿고 그렇게 땡전 한 푼 없이 떠난 노난님은 각종 어플로 무장한 채 상해에 첫 발을 내딛게 되는데 상하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당황하게 된다. 상하이는 분명 미래 도시랬는데 왜 또 현재 도시처럼 종이 서류를 작성하라는 건지 왜 디디도 알리페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지 어리둥절한 관광객의 시점에서 쓴 이 좌충우돌 여행기를 당시에 정말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많은 어플들이 이 전에는 없던 걸 가능케 했고 판데믹을 지나 다시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여행이 가능해진 시대가 되자 이제는 정말로 미래 도시로의 여행이 가능해졌다. 치앙마이로 여행을 계획 중인 분이라면 eSIM, Bolt, GNL, 이 세 가지만 기억하자. 이것들과 함께라면 미래 도시, 치앙마이로의 여행은 정말로 현실이 될 수 있으니까.
치앙마이 여행기, 네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