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유러비' 덕분에 유럽 와서 살아보게 된 사연
"아니, 여자 친구 이름을 000으로 저장하는 사람이 어딨어?"
연애 시절, 현 남편이자 구 남자 친구의 핸드폰을 보다가 싸운 일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연락처를 그냥 무미건조하게 이름 석자로 저장해놓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싸우다가 알게 된 사연은 남편의 이름대로 인생을 살게 된 친구 이야기였다. 아니 정확히는 장난 삼아 지은 별명 때문에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적이 있어, 남편은 트라우마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연애 시절 내내, 나의 이름은 000으로 남편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었고 그 이유가 납득된 나도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결혼하면서는 서로가 '외조의 왕', '내조의 여왕'으로 저장되어있으며 10년째 이름대로 서로에게 사랑하며 봉사하고 있다.
2011년이었다. 나는 그때 28살이었다. 첫 아이는 서른 전에 낳아야 좋다더라, 결혼은 아홉수를 피해서 해야지, 이런 온갖 고정관념의 노예였던 나는 그 해 나와 같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수많은 여자 동기들과 같이 28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바로 임신을 했다.
태명은 '유러비'로 할래!
원래, 결혼 전에 친구와 인도 여행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큰 일을 앞두고 여행을 가면 안된다는 주변의 만류로 인도 여행은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인도 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큰 일을 치르고 난 후(즉, 결혼한 후), 유럽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고, 남편도 동의를 했었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덜컥 임신이 되어 버려서, 유럽 여행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보고 잊지 말고 유럽여행을 같이 가던지, 보내 주던지 하라는 마음으로 태명을 '유러비'로 정하자고 했다. 이름의 중요성을 아는 남편이지만 신혼 때는 사랑이 아주 충만하고 부인이 한없이 귀여운 상태가 아닌가, 그래서 남편의 적극 동의로 우리 아들의 태명은 '유러비'가 되었다.
그때 나와 많이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저 내가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다녀온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신혼여행지는 몰디브였다. 정말 어이없게 아이 태명에 자신의 '유럽 여행'소원을 담아 넣었다는 것은 친한 지인들에게만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신혼여행지가 유럽이어서 '유러비'인 척했다.
그렇게 10달 동안 유러비는 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그리고 7월 아이의 예정일 근처에 남편에게 해외출장 제의가 들어왔다. 무려, 프랑스 파리였다. 하지만 남편은 첫 아이의 출산을 함께 해야 했기에 그 출장을 갈 수 없었다. 우리는 역시 '유러비'가 또 한 번 우리 가족의 유럽행을 막았다며 웃었다.
그래도 '유러비'의 은혜로 나는 결혼하고 2014년 친구와 2주 간의 유럽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 남편도 독일 출장을 3번이나 다녀오며 독일 맥주 마니아가 되었다. 그런데 '유러비'의 힘은 여행을 보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7년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이 아니는 다른 지역의 대학원을 준비하니 남편이 나의 대학원 근처로 이직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에 똑 떨어지고, 남편은 이직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직이 남편을 폴란드로 발령 나게 했고, 폴란드로 간 남편을 따라 구 '유러비', 현 아들과 나도 같이 폴란드에 와서 잠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러비'덕분에 유럽 와서 살게 되었다며 신기해하고 있다.
이쯤 되니, 그때 만약 우리 아들의 태명을 '유러비'가 아니라 '미구기'로 지었으면 미국 가서 살게 됐으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이름빨이 잘 든다면, 만약에 둘째를 낳으면 태명을 뭐로 지으면 좋을까, 생각해보는데 딱 지금의 마음으로는 '더히리'라고 짓고 싶다. 우리 BTS와 한남 더 힐에서 이웃사촌으로 살 수 있게 말이다. 뭐, 소원은 내 마음이니까...